제목 | 그분이 진정 바라신는 것은... | |||
---|---|---|---|---|
작성자오상선 | 작성일2001-03-25 | 조회수2,726 | 추천수17 | 반대(0) 신고 |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이것은 결국 하느님께서 우리를 시켜 호소하시는 말씀입니다> (2고린 5,20)
오늘 복음 말씀의 주인공은 얼핏보면 "돌아온 탕자"인 듯이 보인다. 그 조연으로 아버지와 큰 아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로... 그러나 오늘 복음의 진짜 주인공은 "아버지"이시고 조연으로 작은 아들과 큰 아들이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탕자인 작은 아들이 어떻게 회개하게 되었느냐에 촛점이 있지 않고 또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있으면서도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적인 큰아들의 잘못을 지적하는데 있지 않고, 오로지 그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자비와 용서가 얼마나 크고 무한하며 끝이 없는가를 말해주려는데 있다. 아버지는 작은 아들이 자기를 떠나갈 때부터 마음이 아프지만 자식의 기를 꺽지 않으려고 자식을 떠나보낼 정도로 사랑이 많으신 분이었다. 그리고 자식과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마음으로는 늘 그 자식을 걱정하고 염려하시는 분이었다. 자나깨나 그 자식 걱정이고 눈물로 한숨을 지새곤 하였다. 그 자식이 모든 것을 말아먹고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놀다가 상거지가 되어 돌아오지만 아버지 눈에는 살아서 돌아온 것외에 더이상 바랄 게 없었다. 그 자식이 미워서, 그래 너 이제부터 고생 좀 해봐라, 하며 진짜 품꾼으로 삼는 그런 비정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모든 재산을 다 풀어 잔치를 베풀어도 괜찮았다. 이 기쁨을 어찌 물질로 계산할 수 있단 말이요. 큰 아들은 불만을 토로했지만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 네꺼니까 걱정말아라. 그냥 무조건 다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대부분의 아버지가 그런 분들이 아니실까? 말로는 직접 표현을 안해도 가출한 자식 땜에 온갖 가슴앓이를 다 하시는 그런 아버지들이 아니신가? 큰 아들이 잘 하는 듯이 보여도 깊이 감사하지 않고 있음도 잘 알고 있는 아버지시다.
이 이야기의 다음 부분은 어떻게 전개될까? 작은 아들도 큰 아들도 진정 아버지와 함께 기쁘게 행복하게 잘먹고 잘살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 피날레일 것이다. 작은 아들도 회개하고 큰 아들도 회개하고 그 회개의 기쁨이 부활의 기쁨이 된다.
자, 그렇다면 우리의 아버지이신 그분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돌아온 탕자임을 고백하고 아버지께 품꾼으로라도 써달라고 무릎꿇고 빌기를 원하실까? 이제 회개하고 잘 살겠습니다 하는 각오로 매일 미사를 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애덕실천과 희생도 잘 하는 완벽한 신앙인이 되기를 원하실까? 아니면 큰 아들처럼 늘 복을 누리고 사니 다른 사람을 더 잘 받아들여라. 너보다 못한 사람을 받아들여라 하고 말씀하시는 걸까?
아니다, 그분이 바라시는 유일한 것은 내가 너희를 그토록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것일게다. 너희 죄가 아무리 크고 진홍색처럼 붉다 하여도 나는 그때문에 너희를 애시당초부터 미워한 적도 없고 늘 용서했다는 것을 알아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신뢰하지 못하고 아직도 그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너의 그 불신앙을 벗어 던지라는 것이다.
작은 아들과 큰 아들이 회개한 것은 아버지의 이 엄청난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체험했기 때문이지 그들의 회개를 위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할 유일한 단 한가지는 오늘 바오로 사도가 이야기하듯이 하느님과 화해하는 것 밖에 없다. 그분을 사랑하면서도 짐짓 두려워하고 그분의 자비를 믿으면서도 설마 내 죄의 구석구석을 다 파헤치신다면 도저희 용서하지 않으실껄 하는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버리고 무한하신 사랑과 용서와 자비의 아버지이심을 재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과의 화해이다. 이 화해를 이룬 자만이 작은 아들처럼, 큰 아들처럼, 진정으로 회개의 기쁨을 부활의 기쁨으로 노래할 수 있게 된다.
아, 부활이여! 그분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체험하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참 기쁨이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