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벗(부활5주 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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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1-05-18 | 조회수2,130 | 추천수11 | 반대(0) 신고 |
2001, 5, 18 부활 제5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요한 15,12-17(나는 참 포도나무)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시오. 누가 자기 친구들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내놓는 것, 그보다 더 큰 사랑은 아무도 지니지 못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명하는 것을 여러분이 행하면 여러분은 나의 친구들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더 이상 종들이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종은 자기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나는 여러분을 친구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여러분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여러분을 택했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내세운 것은, 여러분이 (떠나)가서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도록 하려는 것이요, (그리하여) 여러분이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다 그분이 여러분에게 주시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명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서로 사랑하시오. [위의 성서 본문은, 성서 원문의 직역에 가까운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에서 실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200주년 성서의 내용을 올리겠습니다.]
<묵상>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오래전부터 '벗'(친구: 親舊)라는 말을 참 좋아했고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자주 쓰곤 합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친구'라는 말보다는 '벗'이라는 말이 더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같은 뜻을 지닌 순수 우리말과 한자어인데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편지나 카드를 보낼 때, 그리고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에도 발신자에 '누구 누구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라고 곧잘 씁니다. 참으로 '벗'이기에 '벗'이라고 쓸 때도 있겠지만, 그보다 '벗'이 되고픈 제 마음을 이렇게 담아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가끔씩 "신부님의 벗 누구"라고 쓴 편지나 이메일을 받을 때면 저도 모르게 마음에서 잔잔한 웃음을 지어보곤 합니다. 이심전심이라고나 할까요.
도대체 '벗'이란 누구이길래, 왜 '벗'이 되고픈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사전적인 의미를 떠나, '벗'이란 '서로에게 놓인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마주하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지기에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 벗이 되고 싶은가 봅니다. 숨길 것 없는 사이, 그러기에 진정 자신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내어 놓을 수 있는 사이, 딱히 무엇을 함께 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만남을 이루는 사이가 벗이라고 생각하기에, 지금 만나는 모든 이에게 벗이 되고 싶고 지금 만나는 모든 이를 벗으로 맞이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오늘 아주 반가운 소식, 기쁜 소식(복음)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벗으로 부르시겠다는 소식 말입니다. 주님으로 고백하기에 스스로 예수님의 종이라고만 생각했던 제게 이제 종이 아니라 벗으로 삼으시겠다는 반가운 소식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가 당신의 벗이 될 수 있는 까닭은 당신이 저를 부르셨고, 당신이 하느님 아버지께 들은 것을 제게 모두 다 알려주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슴이 벅차오르면서도 조금은 의아해집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예수님을, 그리고 예수님께서 알려주셨다는 그 모든 것을 제대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잘 알고 싶어 기도했고 묵상했고 공부해 왔지만, 그 때마다 알게되는 사실은 '정말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뿐인데, 그런 저를 예수님께서는 벗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에 대해서, 아버지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서로 사랑하여라.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그래, 네가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사랑을 하게 되면, 왜 내가 너를 벗이라고 부르는지 알게 될 것이다. '
기도를 하고, 성서를 읽고 묵상하며, 어려운 신학 서적을 읽으면서 고뇌하는 까닭이 아버지와 예수님을 더 잘 알고 더 가까이에서 함께 하기 위한 것에 있다면, 해답은 오히려 단순한 곳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라, 사랑하면 알게 되리라.'
사랑, 벗, 부르심! 이 모두가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오는 시간입니다. 사랑함으로써 벗이 되고, 벗을 위해 내 목숨을 바치는 참 사랑을 통해 예수님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하며, 벗이 되신 예수님께 오늘 하루를 맡깁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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