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의 평화, 세상의 평화(부활6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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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1-05-21 | 조회수1,633 | 추천수12 | 반대(0) 신고 |
2001, 5, 20 부활 제6주일
요한 14,23-29 (위로의 말씀-성령을 약속함)
만일 누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입니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우리는 그에게로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들을 지키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듣고 있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있는 동안 나는 이것들을 여러분에게 말했습니다. 협조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 주실 성령께서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고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상기시켜 주실 것입니다.
나는 평화를 여러분에게 남겨 두고 (갑니다). 내 평화를 여러분에게 줍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도록, 또한 낙담하지 않도록 하시오. 내가 떠나갔다가 여러분에게로 (돌아)온다고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것을 (여러분은)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면 오히려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내가 여러분에게 말해 두는 것은 (그 일이) 이루어질 때에 여러분이 믿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평화를 갈망합니다. 모든 사람은 평화를 말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평화롭지 못하다는 뜻일 겁니다. 물론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개인적인 차원, 내면적인 의미의 평화라기 보다는 사회적, 국가적 차원의 평화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누리는 평화의 이면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본다면, 그 사람의 평화를 위해 누군가가 희생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입니다.
오늘날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이 세상을 20대 80의 사회라고 말합니다. 세계의 80%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희생과 빈곤을 기반으로 20%의 사람들이 물질적인 풍요화 평화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평화입니다. 이 평화를 위해 80%는 침묵해야만 합니다. 힘없는 사람, 억눌린 사람, 가난한 사람의 침묵으로 이루어진 평화, 과연 이것이 진정한 평화인가요? 아닙니다. 신앙인으로써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아니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거짓 평화일 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주십니다. 몇몇 사람만이 누리는 세상의 평화가 아니라 모든 이가 넉넉하게 나누는 당신의 평화를 말입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을 떠나기 앞서 고별 담화를 하시면서 약속하시는 평화이기에 그만큼 더 가슴 미어집니다.
사랑과 정의, 나눔과 섬김으로써 모든 이가 한 형제 자매를 이루는 예수님의 평화는 힘과 소유, 지배와 종속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평화와 다른 것이기에, 세상의 평화를 거슬러 예수님의 평화를 이 세상에 심는 이들은 이 세상으로부터의 고난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결코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평화를 이 세상에 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십니다. 예수님의 격려와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보내주신 협조자 성령의 이끄심에 힘을 얻은 우리는 오늘 이 시간 세상의 거짓 평화를 폭로하고 예수님의 참 평화를 선포하는데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평화, 세상의 평화
세상은 평화를 원한다. 세상은 평화를 말한다. 가부장적인 횡포 앞에서 며느리의 침묵은 가정의 평화요, 재벌 자본가의 횡포 앞에서 힘없는 노동자의 침묵은 경제의 평화요, 안하무인인 정치권력의 횡포 앞에서 국민의 침묵은 사회의 평화요, 권위주의적 성직자의 횡포 앞에서 신자의 침묵은 교회의 평화요, 총캎을 앞세운 강대국의 횡포 앞에서 힘없는 나라의 침묵은 세계의 평화다. 굴종과 침묵은 곧 세상의 평화다. 힘을 가지고 횡포를 부리는 자들은 평화를 누리고 힘없는 자들은 평화를 강요당한다.
예수님은 평화를 원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평화를 말하지 않으신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평화는 강요할 수도, 강요당할 수도 없는 것 평화의 이름으로 자행된 온갖 억압을 뒤집어야 한다. 침묵하지 말라. 굴종하지 말라. 더 이상 평화는 없다. 분노하라. 일어나라. 깨뜨려라. 그리고 다시 세워라.
예수님은 평화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평화를 말하신다. 예수님은 평화를 주신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평화는 부활을 희망하며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예수님의 선물이다. 참 평화는 거짓 평화를 부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예수님의 선물이다. 이 선물을 누릴 자 과연 누구인가?
('예수의 평화, 세상의 평화'는 예전에 한번 게시판에 올렸던 묵상글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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