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과 나의 안타까움(6/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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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우진 | 작성일2001-06-06 | 조회수2,169 | 추천수11 | 반대(0) 신고 |
나는 청소년들의 수련회를 진행하기 전에 늘 이렇게 이야기한다.
"편안하게 지내세요!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 친구, 수녀님, 신부님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입니다. 규칙을 잘 지키라는 뜻이 아닙니다. 듣는 다는 것은 단지 귀로만 드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것으로만 들으면 그 사람이 말하고 있는 것을 온전히 알아들을 수 없어요. 그 사람의 마음, 눈빛, 얼굴 표정 등을 잘 듣는 것!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이 우리가 수련회동안 지켜야할 중요한 조건입니다. 이 시대가 어려운 이유는 말하는 사람은 있으나 잘 들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잘 들어줍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아이들은 옆 친구와 장난이나 수다, 핸드폰에 온 문자에 온 신경이 가버린다. 난 한편으로 허탈함과 실망도 들지만 그중에 나에게 초롱대는 눈망울로 응답을 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큰 위안을 삼는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1박 2일, 2박 3일 동안 난 일관성있게 듣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수련회가 끝나고 가끔 아이들의 소감문을 보면 그 "들음"의 효과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더욱 "들음"에 대해 강조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계명을 말씀해주신다. 그 전에 하시는 말씀은 "쉐마 이스라엘" 즉"이스라엘아. 들으라" 이다.
이 말의 신학적인 의미나 역사적인 유래를 거론하기보다 난 오늘 나에게 하느님께서 당신의 맘, 눈빛, 얼굴 표정, 그리고 말씀을 잘 들어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삶 안에서 여러 사건들을 통해 그런 말씀을 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하지만, 이 순간 또 다른 생각이 든다. 그것은 마치 내가 1박 2일의 수련회를 온 학생이 된 듯하고, 그 수련회를 하느님께서 지도하시는 것같다는 느낌이다.
수련회 안에서 보여준 아이들의 모습을 내가 하느님께 보여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보면서 느꼈던 안타까움과 하느님께서 나을 보시면 느끼시는 안타까움은 어떤 차이일까? 오늘 하루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겠다. 그분께 여쭤봐야 겠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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