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장 완전한 울타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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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근호 | 작성일2001-06-12 | 조회수1,410 | 추천수15 | 반대(0) 신고 |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2001. 6. 13 복음 : 마태 5, 17-19 완성하러 왔다. 다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라도 스스로 지키고,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
초보생각 담장 없애기... 대구 모 본당은 담장을 없애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담장 없애기 전 가장 걱정을 한 것은 안전문제였다. 담장, 울타리는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과연 그 보호 장치를 풀고 안전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왜인가? 도둑이 원하는 것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울타리를 없애면, 너도 나도 볼 수 있다. 사방팔방 막힌데가 없어서 누구나 볼 수 있다. 도둑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일 좋은 울타리는 울타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완성은 아니다. 이 형태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울타리의 완성판은 울타리란 말 자체가 필요없어 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에게서 떠나지 못하도록 둘레를 막고 있는 울타리이다. 그렇다면 율법의 완성을 결국 율법의 필요성이 없어지는 것이다. 더 이상 울타리가 필요없는게 완전한 울타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율법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사람들 한가운데 하느님의 사랑으로 나타났으니...
그렇다면, 율법은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스스로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침으로써 그것이 법이 아니라 당연한 삶의 방식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울타리가 없는 것이 보이지 않는 울타리로 강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둑질하고 도둑맞을 걱정이 없어짐을 완전함으로 하듯이 말이다. 당연히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 것이 법이 아니라 당연한 삶의 방식인 것이 정상이듯이...
예수님은 결국 율법의 완성으로 사랑의 삶의 방식을 채택하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법의 테두리 속에 살고 있다. 특히 고해성사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고해성사를 볼 때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한다. 그러나 오히려 적극적인 사랑의 삶을 살지 못했음을 반성해야 하는데...
완성된 울타리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아니라 자체가 필요없는 것. 완성된 율법은 적극적 사랑의 실천이다. 하루의 삶...얼마나 적극성이 있었는지 살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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