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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법보다 사람을 먼저 보기(안토니오 기념일)
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1-06-13 조회수1,565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01, 6, 13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복음 묵상

 

 

마태오 5,17-19 (예수와 율법)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시오.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습니다. 진실히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하늘과 땅이 사라질 때까지, 모든 일들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가장 작은 계명들 가운데 하나라도 어기거나 그렇게 하도록 사람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라 일컬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행하고 가르치는 사람이야말로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 일컬어질 것입니다.

 

 

<묵상>

 

제가 살고 있는 사제관은 욕실이 딸린 자그마한 침실과 조금 넓은 거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혼자서 생활하기에는 넉넉한 공간입니다. 가끔씩 몇몇 손님들을 맞더라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만큼은 됩니다.

 

그런데 방학 때가 되면 사정이 조금 바뀝니다. 본당의 부제님들(이번 7월에 3분이 사제품을 받습니다.)과 학사님들이 신학교 방학을 하고 본당에 나오시면, 본당 안에 마땅히 머물 곳이 없기 때문에, 본당에 있는 시간에는 주로 제 방에 있게 됩니다.

 

처음에는 오랫만에 만난 기쁨에 함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르다보면, 특별히 혼자 있고 싶을 때면 왠지 짜증이 나는 때도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부제님들이나 학사님들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일이 이쯤 되면 좀 더 사제관이 넓었으면, 아니 부제님들이나 학사님들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절실합니다. 사제관이라는 주어진 공간은 변한 것이 없지만, 그 공간 안에 있는 제 마음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사랑하는 후배들과 함께 하는 정겹고도 넉넉한 공간이기도 하다가, 서로를 불편하게 하는 답답한 공간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느낌은 변화는 단지 사제관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 안에 함께 있는 후배들에게까지 미치기 마련입니다. 언제까지나 함께 있고픈 후배로서 다가오다가도 때때로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제 공간에 대한 느낌에 사람에게 전이되어 괜히 속으로 짜증을 내고 아무 탓 없는 후배들만 제 머리 속에서 애꿎은 미움을 받게 되지요.

 

참으로 우스운 일입니다. 물질(사제관) 때문에 사람이 괴롭힘 당하는 꼴이 말입니다. 사람들의 보다 자유로운 삶을 위해 봉사해야 할 물질 때문에, 오히려 사람이 외적이든 내적이든 자유를 잃게 되는 것이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우스운 현상을 뒤집어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그런데 해결책은 아주 단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질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보는 것이지요. 사람을 중심에 놓고 물질을 바라본다면 물질을 그 본연의 목적에 맞게 슬기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게 물질에 이용당하지 않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폐지가 아니라 완성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율법을 단순히 사람을 위해 이용되어야 하는 물질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율법의 폐지가 아니라 완성이라는 것은 '사람을 바라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율법'()을 볼 때, 맹목적으로 율법의 준수를 강요하거나, 이와는 정반대로 무조건적인 율법의 폐지를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먼저 바라볼 때 율법은 그 참된 의미를 회복하여 사람을 살리는 무엇이 될 수 있고,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율법의 완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주위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법과 규칙들, 물질적인 여러 조건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것들 안에서 사람을 만납니다. 아니 사람들을 잘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이러한 것들을 만납니다. 무엇이 내 눈에, 마음에 먼저 들어오는지 돌아봅니다.

 

사람이냐? 아니면 법이나 물질적인 조건들이냐?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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