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체성혈대축일에... | |||
---|---|---|---|---|
작성자오상선 | 작성일2001-06-17 | 조회수2,317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성체성혈의 신비는 우리 크리스천 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신앙생활의 실천이 바로 이 성체성사를 통해서 의미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체성혈의 신비는 명확하게 우리에게 체득되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매일 받아모시는 성체가 진정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체험적으로 믿고 우리 안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가? 정말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고 그것을 우리가 자주 받아 모신다고 한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변화되어 있어야 할까? 우리가 받아모신 성체와 성혈은 또 그 얼마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화 되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필경 신학적으로는 사제의 축성기도와 거양성체를 통해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었다 하더라도 실제적으로 그 빵과 포도주 형상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우리 안에 들어와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냥 다른 음식물에 섞여 썩어 배설되었을 뿐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정말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성사화가 되었다면 오늘 복음의 보잘것 없는 보리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수천명을 배불리 먹이시고도 남을 만큼의 성변화가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어제 만난 건축가 친구가 하는 말: <설계를 의뢰하는 사용자는 여러 자재를 물리적인 공간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치 할까 하는 것이 주 관심사라면, 설계를 하는 건축가는 그 자재들을 이용해서 마치 요리사가 요리재료를 이용해서 그 재료와는 완전히 딴판인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듯이 화학적 반응이라 할 수 있는 변화를 주려는 것이 주 관심사이다... 그래서 사용자와 건축가 사이에 마찰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 빵과 포도주가 그냥 우리 몸 속으로 물리적으로만 이동해서는 그냥 하잘것없는 빵과 포도주일 뿐이다. 그러나 그 빵과 포도주가 우리 몸 속에서 완전히 육화되어 그리스도화 될 때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것이다.
우리 신앙생활 자체도 기도를 한다, 전례를 한다, 애덕실천을 한다. 윤리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한다 등으로 아무리 치장한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크리스천으로서 휼륭히 사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바리사이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우리 크리스천과 바리사이가 다른 점은 바리사이들은 이러한 율법 실천을 통해서 완벽한 신앙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물리적 배치에만 관심을 가진 건축을 의뢰하는 사용주라면, 우리 크리스천은 그 율법에 담겨있는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 삶으로 실천함으로써 그 율법을 육화시키는 건축가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에 그분은 "너희가 주어라!"고 하신다. 그렇다! 우리가 바로 새로운 빵이요 물고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바로 주님께서 기적을 일으킬 재료로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가 비록 보리빵과 물고기처럼 하잘것없는 존재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육간의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는 귀한 재료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제2의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렇게 그분이 우리에게 당신 살과 피를 내어주셨듯이 우리도 바로 그분이 사용하실 재료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때 그분은 훌륭한 건축가가 되시어 우리라는 보리빵과 물고기를 통해 오늘도 새로운 기적을 불러일으키실 수가 있으리라! 암, 그렇게 되고말고... 아멘. 알렐루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