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당신을 괴롭히지 않겠습니다(이레네오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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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1-06-28 | 조회수2,448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2001, 6, 28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마태오 7,21-29 (하느님의 뜻을 행하라, 집짓는 사람들의 비유, 청중의 반응)
"나더러 '주님, 주님'하는 사람마다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갈 것입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 주님, 우리가 당신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당신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당신 이름으로 많은 기적들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 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범법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선언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제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입니다. 비가 내려 큰물이 닥치고 또 바람이 불어 그 집을 들이쳤으나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 집은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도 그것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제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을 것입니다. 비가 내려 큰물이 닥치고 또 바람이 불어 그 집을 휘몰아치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깡그리 무너져 버렸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들을 마치고 나서 군중은 그분의 가르침에 매우 놀라게 되었다. 그분은 그들의 율사들과는 달리 권위를 지닌 분으로서 그들을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묵상>
어제는 15주간에 걸친 견진 교리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견진 교리를 받는 기간동안 작성한 과제물을 받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교리를 맡았던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주어진 과제물은 '마르코 복음 쓰기'와 '매일 기도표'(신자라면 매일 바쳐야 할 기도들을 얼마나 충실히 바치고 있는지 각자 양심껏 표시하도록 만든 표) 작성이었습니다.
15주 교리와 과제물 제출, 사실 학생들에게는 버거운 일입니다(그렇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갈수록 느슨해지는 신앙의 감각을 되찾기 위해 때로는 힘든 과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교리 시간에 많이 떠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리 밉지 않았습니다. '학생 때 다 그런거지... 수업 끝나고 학원 갔다가 얼마나 피곤하겠어... 열심히 나와주는 것만 해도 얼마나 기특한지...' 라는 생각을 했지요. 물론 교리 시간에 이래저래 야단을 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과제물만큼 계속해서 강조를 했습니다. '제발 마지막 교리 시간에 꼭 내야 한다.' 때로는 협박조로 때로는 애원하듯이...
어제 드디어 과제물을 걷는 날... 속으로 많이 걱정했습니다. 만약에 과제물을 제대로 해서 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걱정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과제물을 제대로 해서 낸 학생은 단 두 명뿐이었습니다. 반밖에 쓰지 못한 학생, 거의 쓰지도 못한 학생, 매일 기도표에 기도를 했다고 표시한 것은 손을 꼽을 정도고... '내가 그렇게 간곡하고 이야기했건만...'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했습니다. 과제물을 제대로 제출하지 않으면 견진 성사를 줄 수 없다고 했던 그 전의 약속들 때문에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너희를 믿는다. 7월 15일까지 쓰지 못한 부분을 꼭 써서 내야 해. 알겠지? 만약 그 날까지 내지 않으면 그 날 이후 나를 볼 생각을 마라."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이것 밖에 없었습니다. 조마조마 가슴 조리던 학생들은 견진 성사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예전처럼 큰 소리로 자신있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예! 꼭 낼께요. 걱정하지 마세요."
'예들아! 내가 어떻게 너희를 보지 않을 수 있겠니? 그러니까 제발 제발 7월 15일에는 과제물 중에서 못한 부분을 꼭 내다오.' 지금의 제 심정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날도 어제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날에,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은 사람에게 '나는 너희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범법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라고 선언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문득 예수님의 괴로운 심정을 생각해봅니다. 어제 제가 바로 이 심정이었지요. 믿는 이들을 겁주기 위해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품에 안으시려는 예수님의 애절한 마음이 담겨 있기에, '주님, 주님'하며 말만 앞서고 제대로 주님의 뜻을 실천하지 못하고 사는 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기도합니다. 어제 제게 자신있게 대답했던 학생들의 입장에 서서 말입니다.
'예수님! 그 날, 당신을 괴롭히지 않을께요. 걱정마세요. 아니 그 날, 당신을 괴롭히지 않도록 오늘 당신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아멘'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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