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설거지
작성자아틀란타한국순교자천주교회 쪽지 캡슐 작성일2001-06-29 조회수1,617 추천수17 반대(0)

 설거지

 

요즘은 교회에서도 절집에서도 사람 사는 도리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입술이 부르트게 가르치고 그런 모임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는 열성적인 사람들이 많아졌다. 좋은 징조임에 분명하고 나 또한 어떤 곳에 가더라도 하느님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열심히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내가 보아도 무엇하나 달라진 것이 없음이 분명한 세상이니 말이다. 어디를 가도 사람의 도리를 말하고 윤리를 말하고 있지만 도처에서 도리가 무너지고 윤리가 짓밟히는 것을 볼 수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웠을까.그 많은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듣는 귀가 없다면 소 귀에 경을 읽는 격이요 실천이 없다면 돼지 목에 진주이며 그 마음 안에 사랑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은 부자집 잔치에 초대 받은 손님에 비할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식탁에 앉아서 음식을 먹기 보다는 무엇이 차려져 있는지 눈으로만 보고 먹어본 사람들이 얼마나 맛있는지 말하는 것만 듣고는 돌아오는 손님 말이다. 음식이란 아무리 맛이 있어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수가 없는데 우리는 먹어보지도 못한 음식을 이야기 하면서 누가 그러는데 어떤 음식은 어떻게 생겼고 맛은 어떤지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꼴이 아니고 무엇인가.

설령 맛있게 먹었다손 치더라도 소화 시킨 음식찌꺼기를 배설하지 못한다면 맛있는 음식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또한 맛있는 음식을 씻지도 않은 그릇에 아무리 보기 좋게 담아 놓은들 그 음식을 먹고 싶겠는가.

우리네 마음그릇도 이와 같다. 좋은 가르침을 들었으면 마음그릇에 담아 내 삶의 영양소로 삼아 실천해야 하며 그 결과는 열린 마음그릇을 흘러가게 둘 일이다.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를 하듯 우리네 마음그릇도 설거지를 잘 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을 준다 하더라도 오염된 그릇에 담겨진 가르침은 올바로 배설되지 못하고 몸 속에 남아 건강을 해치게 되는 법이다. 보고 들었으면 실천하라는 것이고 영양 섭취가 끝난 찌꺼기는 배설하는 것처럼 우리도 버려야 할 것들을 마음에 담아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를 하듯 우리네 마음그릇도 부지런히 씻을 일이다.

정갈하게 씻은 마음그릇에 맑은 생각 한 점 담아 드리는 것이야 말로 향기로운 기도가 아니겠는가.

맛있는 말씀을 맛있게 먹은 후 날마다 쑤욱 쑥 크는 영혼은 실천이라는 운동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니 오늘은 나도 내 영혼의 키가 얼만큼인지 키재기를 해 볼거나?

설마 도토리 키재기라 해도 큰 도토리도 있고 작은 도토리도 있으니 내가 제일 작은 도토리는 아니겠지?

어쨌던 도토리는 도토리이니 작다고 골라내어 버리지만 마시옵소서.

도토리 모자 같은 마음그릇 일지라도 부지런히 설거지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 병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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