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소중한 우리의 몸(10) | |||
---|---|---|---|---|
작성자박미라 | 작성일2001-07-09 | 조회수1,776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 여자를 보시고 "안심하여라.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하고 말씀하시자 그 여자는 대뜸 병이 나았다. 그 사람들이 밖으로 다 나간 뒤에 예수께서 방에 들어가 소녀의 손을 잡으시자 그 아이는 곧 일어났다. 마태오 9, 22. 25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고쳐주셨습니다. 과부의 외아들도 살려주시고, 나자로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으시고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 올라 눈물을 흘리’(요한 11, 33. 35)셨으며 썩어서 냄새가 나는 그를 살려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육신을 참으로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2000년 역사 안에서 천주교회 안에서는 사람의 육신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더러 하느님께 나아가는 방해물로 여겨 무조건 쳐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는 "육신"과 "세속"과 "마귀"라고.... 그러나 천지창조로부터 구약 성서 전체와 마태오 복음으로부터 요한 묵시록에 이르는 신약 성서 전체를 통틀어 볼 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육신을 소중하게 여기시지 않으시는 분이시라면 왜? 우리 눈에 보이는, 우리 육신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만드셨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육신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이 아니시라면 왜?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시어 십자가 위에서 죽어 당신의 살과 피를 먹이로 내어놓으셨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육신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이 아니시라면 왜? 묵시록에서 이 세상이 다 끝난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시겠다고 하셨겠습니까? 그 "새 하늘과 새 땅"은 새롭게 꾸며진 우리의 육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나의 육신"은 분명 없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육신"이 없다면 나는 영원하신 나의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나의 육신"은 아버지께로 나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사랑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이 다한 후에 사랑을 얼마나 많이 실천했는가에 따라서만 심판하시겠다고 말씀(마태오 25장 참조)하셨습니다.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자기 자신의 살과 피를 이웃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사랑의 원천이신 분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고 말씀하시며 세상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올곧게 실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기 위하여 역사 안에서 실제로 십자가상의 죽음을 통하여 눈에 보이는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 모두의 먹이로 내어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람입니다. 짐승은 없어질 땅에 속하여 목숨이 다하면 죽게 되어 있지만, 사람은 영원한 하늘에 속하여 있기에 결코 죽을 수가 없습니다. 산 목숨이, 아니 영원히 살아야 할 목숨이 죽은목숨이나 다를 것이 없다면 그것은 얼마나 비참한 일이겠습니까? 자기 스스로를 짐승과 동등한 위치에 두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실천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짐승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만 행동하기에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행위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를 "본래의 자신의 모습인 참 사람으로 되돌려 영원히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신 분과 같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만’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려면 다른이에게 내어주어야할 "자신의 몸"을 먼저 깨끗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몸"이 바로 "이웃의 음식"이기 때문이며, 이웃에게 자신의 몸을 먹이로 내어준 그만큼 참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님과 같이 깨끗하게 되어 영원한 아버지 나라에서 그분과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더럽거나 상했거나 다른 물질이 섞여 있는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나게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아무리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이웃에게 내어주려 해도 먼저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이웃에게 영양분을 주어 살게 하기보다는 받아먹은 이웃에게 배탈을 일으키게 하여 오히려 해를 입힐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올곧게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이웃에게 배탈을 일으키지 않고 생명을 줄 수 있는 "생명의 먹이"가 되어 줄 수 있겠습니까?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짐승처럼 죽게 된 우리를 본래의 사람의 모습이 되어 살아 날 수 있게 하여주시기위해 스스로 죄인이 되시어 십자가를 지고 해골산으로 올라가 알몸이 되어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님을 따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해골산으로 올라가 십자가의 죽음을 치러내는 것입니다. 그 방법을 통해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난 후에 자신을 온전한 먹이로 변화시키고 나서야 비로소 이웃에게 참 생명을 줄 수 있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 속에 들어가 썩고 난 후에야 비로소 싹을 틔우고 자라나 열매를 맺을 수 있고, 그 열매가 바수어지고 반죽이 되어 불 속에 들어가 익혀진 후에야 비로소 사람에게 먹히어 생명을 줄 수 있듯이, 사람도 죽음에로 이르게 한 자신을 온전히 죽인후에야 참사람이 되고 자신의 육신을 그리스도의 육신과 같이 참생명의 먹이로 변화시킨 후에야 비로소 이웃을 살리는 참생명의 먹이가 될 수 있습니다.
’나를 그리스도님의 몸과 같이 변화시키는 과정’인 ’마음이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에 이르는 과정’에서는 자신의 온 몸을 내어주어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를 통하여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을 올곧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그 과정을 통하여 첫째 계명을 올곧게 실천할 수 있게 되어 참 생명의 먹이가 되신 그리스도를 닮게 된 사람은 자신의 온 몸을 먹이로 내어주는 사랑의 행위를 통하여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을 올곧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자신이 이웃에게 내어준 그 살과 피 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자신을 채워 마침내 온 몸을 그리스도처럼 변화시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님과 같이 "완전한 사람"(마태오 5,48)이 되어 이 세상에서의 생명이 다하는 날 아버지 앞에 불려갔을 때 자기의 할 일을 다하였기에 떳떳하게 그분 앞에 설 수 있게 됩니다.
그 작업은 누구나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자기의 고유하고 거룩한 자리(성소)에서 할 수 있습니다. 제가 15년 동안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누구나 그 작업을 할 수 있다고 말해보았는데, 사람들 안에 자리잡고 있는 고정 관념을 깨기가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2000년을 지나 온 천주교회 역사 안에서 순교자외에는 수도자나 성직자들에게 더 많이 성인 칭호를 붙여주었고, 거룩함의 길로 나아가려면 마치도 수도자나 성직자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가르쳐 왔기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 관념을 깨기가 너무나도 힘이들었습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성직자 중에서도 수도회에 속하지 않는 본당 신부로써 성인이 되신 분들은 별로 없다는 사실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적었을 것입니다. 저도 지난 98년과 올 1월에 유럽 성지 순례를 하고 나서야 그 숙제를 풀 수 있었는데, 수도자들 중에 성인 칭호를 받은 분들이 많은 것은 그 수도회가 자기들의 존속을 위해 일반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애를 썼기 때문에 수도회에 소속 되었던 분들이 더 많이 성인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성인전을 훑어보면 결혼 생활을 한 분들 중에서도 나중에 혼자가 되어 수도원에서 생을 마감한 분들이 나옵니다. 그 여파로 많은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기가 많이 꺽여 자신들의 삶을 거룩한 삶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음에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저는 하늘나라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보통의 삶을 산 분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먼저 따랐던 사람들은 세리와 창녀들과 죄인으로 판단받고 있었던 사람들이었고, 주님께서는 그들이 하느님 나라에 먼저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첫번째 기적을 행하신 주님께서는 결혼 생활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나 독신 생활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조금도 구별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함에로 이끌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다 한결같이 사랑하시는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십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 들어가시어 숨을 쉬게 해주시는 분이 바로 그분이십니다. 다 당신의 나라로 돌아오라고 노심초사하시는 아버지.... 각사람을 당신 손수 만드시고 모든 능력을 알맞게 골고루 불어 넣어주신 분이 바로 그분이시기에 그 사람에게 가장 알맞은 자리에 넣어 완전함의 길로 이끄시는 분도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분께서 그 오랜 동안 세상을 준비하시고 나를 살려주시기 위해 마침내 6000년 전에 입을 열어 말씀을 시작하시고 2000년 동안 하늘나라를 이 땅에 심어주시어 마침내 완성시켜주시고 그 나라 안에 살게 하시려고 나를 부르십니다. 내가 있는 자리, 당신께서 손수 마련하신 내 거룩한 자리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 몸을 먹이로 내어주는 작업을 통해서 당신처럼 깨끗하여지라고.... 그래서 당신과 함께 살자고.... 그것을 위해서 그렇게도 오랜동안 애를 태우며 영원으로부터 지금까지 기다려 온 것이라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