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가 먼저...(성 베네딕도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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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1-07-11 | 조회수1,593 | 추천수12 | 반대(0) 신고 |
2001, 7, 11 성 베네딕도 아바스 기념일
마태오 10,1-7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다.)
또한 당신의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온갖 질병과 온갖 허약함을 고쳐 주게 하셨다. 열도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첫째로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 동기 안드레아, 그리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 동기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와 세관원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과 그분을 넘겨 준 유다 이스가리옷이다. 예수께서는 이 열두 사람을 파견하시면서 그들에게 명하여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이방인들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인들의 도시로도 들어가지 마시오. 오히려 이스라엘 가문의 잃은 양들에게로 가시오. 가서 말하기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하며 선포하시오."
<묵상>
미사 강론 때나 이런 저런 자리에서 복음에 대해서 말을 할 때면 저도 모르게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말주변도 없고, 어휘력도 부족한 제게 있어서 말할 기회가 많다는 것이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하는 이는 네가 아니라 네 안에 함께 계시는 성령'(마태 10,20 참조)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힘입어, 별 두려움 없이 말할 자리에 임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대해서, 믿는 이들의 삶에 대해서 나름대로 자신 있고 당당하게 말하지만, 이렇게 말을 하고 난 후에 제 마음 안에는 '나는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가?' 라는 물음이 떠오릅니다. 많은 경우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바라보면서 좀 더 철저한 삶을 다짐해봅니다.
바깥을 향해 외치기 전에, 제 자신을 먼저 가다듬고 추슬러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오늘 이 시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이방인들의 길로도 가지 말고 가지말고 사마리아 인들의 도시로도 들어가지 마시오. 오히려 이스라엘 가문의 잃은 양들에게로 가시오. 가서 말하기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하며 선포하시오."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에 대해서, 하늘 나라에 대해서 외치기 전에, 네가 먼저 복음화 되어라. 네가 먼저 하늘 나라의 삶을 살아라."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제 자신은 정작 참 사랑을 나누지 못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제 자신은 하느님과 일치된 삶을 살아가지 못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항상 하느님을 의식하며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만나 하나된 삶을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다른 이들에게, 교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믿음의 벗들이든 아니면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교회 밖의 벗들이든 상관없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고 거룩한 사명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자신이 먼저 복음화되고 하늘 나라의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사실 자신이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에만 복음 선포의 사명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개인적 차원에 국한되어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먼저 복음에 충실하고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드러낼 때, 빛과 소금으로 세상 속에 스며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방인이나 사마리아 사람이 아니라 새 이스라엘 백성으로 선택되어 하느님과 함께 하고 있는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서 기쁨과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가장 우선적으로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는 복음이 선포되어져야 할 자리, 곧 가장 먼저 복음화되어야 할 자리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이방인이나 사마리아 사람을 당신 구원으로부터 제외하지 않으셨습니다(이방인 백부장의 종의 치유(8,5-13), 가다라 지방에서 귀신들린 이방인의 치유(9,28-34), 띠로와 시돈에서 가나안 부인의 딸의 치유(15,21-28) 참조). 다만 이들보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것일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모든 이들을 당신 구원에로 초대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는 곧 우리 믿는 이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택은 우리에게 가슴 벅찬 일입니다만, 그릇된 선민의식을 정당화시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응답을 하도록 요청합니다.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먼저 변화되고 이를 통해 다른 이들을 변화시켜야 하는 과제를 맡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교회가 된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에 머문다면 아무런 믿음의 결실도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먼저 복음화되어야 합니다. 먼저 하늘 나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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