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님! 제 손을 잡아 주세요!(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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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미라 | 작성일2001-07-11 | 조회수1,915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노라. 너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랐으니, 백배의 상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리라." --- 영성체송 ---
사람들은 흔히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지극히 국한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리나 강론을 통해서 모든 계층의 삶이 거룩할 수 있다고, 거룩함에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수도없이 말하고 그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대다수의 사람들 마음 속 깊숙히 또는 머리 한 구석에 더 거룩한 삶은 수도생활이나 성직 생활, 즉 독신 생활이라고....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세상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며 어떤 삶의 형태를 택하여 살더라도 누구나가 다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버리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말씀의 진의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눈에 보이는 어떤 삶의 형태나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그 어떤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을 드리기 위해 오늘까지 11회에 걸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있는데, 오늘은 이 부분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진정으로 하늘나라를 차지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고자 하시는 분이시라면 좀 길더라도 끝까지 보아주십시오.
나를 만드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나는 내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나를 어떻게 다루어야 가장 잘 다룰 수 있는지 조차도 모릅니다. 나를 내신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고자 나 자신을 잘 다스리려 애를 써도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마태 26,44)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내 마음대로 내 몸은 잘 따라주지를 않습니다. 그런 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 하느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나의 마음"입니다.
나를 내신 분께로 향하는 나의 마음! 당신을 차지하기 위해서 세상 모든 것을 버릴 가난한 나의 마음! 창조주이시며 주인이신 분 앞에 겸손되이 머리를 숙이는 부서지고 낮추인 마음!
그분은 이미 나를 내시기 전부터 다른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계신, 부족함이 전혀 없으신 분이시기에 "당신께로 향한 나의 겸손된 마음"만을 원하실 뿐입니다. 그 마음만을 보시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약한 본성을 지닌 나를 조금씩 조금씩 당신께로 향해 이끌어들여 주시고 마침내 당신으로 가득채워 당신께서 가지고 계신 온갖 것을 다 누리게 하여 주시고자 하시는 사랑 가득한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나를 만들어주신 그 사랑으로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도 당신께로 향해 나아오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마음! 어렵고 힘겨운 뜀박질 끝에 오는 희혈을 맛보게 해주고 싶어하시는 아버지의 그 마음! 당신께로 달려오는 아이에게서 조금도 눈을 떼시지 않으시고 ’당신의 눈동자처럼’ 지켜주시며 가슴조리며 기다리시는 아버지! 그분은 혹여 내가 넘어질세라그 길에서 장애물이란 장애물은 다 치워놓고 길을 반듯하게 잘 닦아놓고 기다리시는 "사랑이 넘치시는 자비로우신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 아버지는 아이가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너무나도 엄청난 상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모든 것은 다 아이를 위해서 마련되었고, 그 상을 주시기 위해 아버지께서 뜀박질을 시키신 것이며 그 상급은 영원히 아이의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과 ’보이지 않는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일’이 밥먹듯이 쉽게 되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렇다면 상을 받는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참으로 냉랭하지 않겠습니까?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똑같은 죄를 수도 없이 거듭거듭 짓고 또 지으며 그래도 고삐를 늦추지 않고 아버지께로 향하여 달리고 또 달리는 아이를 사랑이 넘치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께서 어찌 돌보아주시지 않으시겠으며, 어찌 내치실 수 있겠습니까?
수도없이 죄를 짓고 또 지으면서도 조금도 굽히지 않고 계속 뉘우치고 결심하며 "고해성사"를 보며 아버지께로 향해 달리는 아이는 마치도 마라톤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의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서 남들이 안하는 고된 훈련을 피땀 흘려가며 끊임없이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 세상 사람 모두가 고된 훈련을 하지 않아도 42.195Km 마라톤 코스를 잘 달릴 수 있다면 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의 영광이란 결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듯이 노력하고 도 노력해도 죄에 빠지는 ’약한 본성을 거스려 덕에 나아가는 일’이 참으로 힘든 일이기만 하기에 그 일은 참으로 가치가 있는 일이며, 그렇기에 마침내는 "영광의 월계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버지께서 내게 씌워주실 "영광의 월계관"은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먹고 마시며 끊임없이 줄지 않는 참행복을 얻어 누릴 수 있는 자격증"입니다. 유한한 이 세상에서도 올림픽에서 영광의 금메달을 받으면 평생 먹고 살 것이 보장됩니다. 그러니 영원하신 하늘 아버지께서야 더 큰 무한한 상급을 주시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요.
영원한 아버지 나라에서 "영광의 월계관"을 받아쓰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님을 따라 나아가는 길은 단 하나인데 그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독특한 모습으로 다양한 삶의 형태를 지니고 달려갑니다. 마치도 옹기장이가 옹기를 만들때 똑같은 모양, 똑같은 크기, 똑같은 용도로 만들지 않고 각양 각색으로 만들어 내듯이 하느님께서 사람을 지어내실 때도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으로 지어내셨기에 다양한 옹기의 쓰임새가 서로 다르듯이, 서로 다른 사람의 쓰임새도 각기 다르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모양으로 자신의 모습을 짐승처럼 만들었기에 사람마다 져야할 "자신의 십자가"의 모양새가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각기 다르게 "각자에게 맞는 거룩한 삶의 형태(성소)"를 마련해 놓으셨는데, 그 하나는 "독신(수도, 성직)성소"이며, 또 하나는 "결혼성소"입니다.
결혼생활은 하느님께서 천지창조때부터 마련하신 거룩한 생활입니다. 독신생활 또한 하늘나라를 위하여 허락하신 거룩한 생활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부모의 보호로부터 벗어나 홀로서기를 해야할 시기에 이르면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생하기 위해 부모의 슬하를 떠나 자신에게 맞는 장소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 선택은 이 세상 그 누구도 관여할 수 없고, 오로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지어집니다. 그런데 각자에게는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에 맞는 "자기의 고유의 자리"기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크기외 모양새와 그 쓰임새가 다 다르게 만들어진 옹기가 각기 맞는 장소에서 그 쓰임새에 다라 쓰여져야 하듯이, 사람도 주어진 능력에 다라 있어야할 장소가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농부의 손에 들려있는 밀알이 스스로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를 선택할 수 없듯이 사람도 자기 자신의 능력이나 모든 여건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며, 자기 자신이 있어야할 장소를 자기 스스로 마련할 수도 없으며 다만 지기를 내신 분의 뜻에 따라서 사건이나 사물이나 사람을 통해 그분께서 보여주시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사람과 밀알이 다른 점은 밀알은 아무런 의지없이 "농부에 의해" 준비된 자리에 뿌려지고, 사람은 자기를 내신 분의 뜻에 따라 자기 안의 더러움을 몰아내기 위해 그분께서 마련해 주신 자기의 자리로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결혼생활과 독신생활 안에서 어떻게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스승이신 예수님을 따라가 자신을 깨끗이 만들고 사랑을 올곧게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대상과 삶의 모습은 다르나 똑같이 먼저 ’자신을 이웃에게 내어주는 사람’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더러움을 말끔히 몰아낸 다음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생명의 빵"이 되어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온 몸이 소멸될 때까지 내어주므로 사랑을 올곧게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결혼하지 않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하느님께로 향한 사랑을 충실히 하고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욕구와 눈에 보이는 세상 안에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것들을 거스르는 생활을 자처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온전히 하느님께만 의지하고 그분만을 사랑하기 위해 세상에 속한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행위를 통하여 세상과 자기 자신에게서 죽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님과 같이 부활하여 마치도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은 후에 싹을 틔우고 자라나 열매를 맺어 빵이 되듯이 하느님의 아들로써 새롭게 태어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첫째계명을 충실히 지키게 된 후에 많은 이들 앞에서 ’자신의 알몸’을 드러내고 ’자신의 온 몸’을 먹이로 내어주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을 지키는 사람으로 "자신의 몸을 먹는 사람 모두를 살려낼 수 있게" 됩니다.
"결혼 생활 안에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로 창조주께서 만들어주신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에 따라 부모를 떠나 배우자 앞에서 ’자신의 알몸’을 드러내며 하느님께서 짝지워주신 배우자와 한 몸을 이루며 일상 생활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온 몸을 배우자와 그들이 속한 사람들 모두에게 내어주는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자신이 내어준 그만큼 깨끗해지고, 깨끗해진 그만큼의 공간에 "하느님의 사랑"을 채워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인 자녀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먹이로 내어줌으로 그들도 살려낼 수 있으며 자신도 그 행위를 통하여 완성시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가 자기 몸 속에 채운 그 사랑을 먹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사랑만큼을 먹이로 내어줄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의 부부가 자신들의 모든 것을 온전히 내어주어 완전한 사랑을 자녀들에게 먹이로 내어 줄 수 있게 된다면, "온전한 생명의 빵이 된 그들의 몸"은 자기의 자녀, 또 그 자녀의 자녀들을 통하여 "세상 끝날까지 많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생명의 먹이"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어떤 삶이 "더 옳다. 그르다."거나 "더 좋다. 나쁘다."거나 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모두가 다 똑같이 소중하고 거룩한 일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 주신 분의 뜻에 맞게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에 걸맞은 길을 찾아내어 스스로 자기를 내신 주인을 바로 알아보지 못해 주인이 되려하여 짐승의 모습으로 죽게된 자신의 처지를 아파하며 본래의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 자신에게 맞겨진 사명(하늘나라 곡간에 알곡을 거두어들이는-사람을 낚는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성소 안에 있는 사람이든 하늘나라를 차지하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님을 따라 자기의 십자가를 지기로 마음먹고 그분께서 자신의 마음 안에 들어오시어 깨끗히 해주시어 아버지 마음에 드는 자식이 되게 해주시도록 자신의 마음의 문을 그분께 활짝 열어드리는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하늘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꼭꼭 걸어 잠궈두었던 내 마음 안은 너무나도 캄캄하여 처음에는 나자신도 들여다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그 곳을 볼 수 있고 아버지께로 나를 인도하실 수 있으십니다. 나는 다만 그분께 손을 내밀어 끌어주시도록 간청하는 일밖에 할수가 없습니다.
내가 둘러쳤던 몇 겹의 문을 뚫고 내 안 깊은 곳에 계시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긴 여정에서 황공하옵게도 하늘나라의 옥좌에 앉아 끊임없는 찬미를 받고 계신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함께 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내가 그분께 손을 내밀어 그분과 함께 그 긴 여행을 시작한다면 그분은 마침내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해 주시어 이 세상에서 벌써 아버지의 얼굴을 뵙게 해주실 것(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며, 그분의 아들이 되게 해주시고(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 당신처럼 온전히 이웃의 참생명의 먹이(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가 되게 해주시는 분이 바로 당신이시기에 영원한 아버지 나라에 들어가는 마지막 날에 그분은 나를 반겨 맞이해 주실 것이고, 나는 이미 그분을 잘 알고 있기에 기쁘게 그분께로 날아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일에만 급급하고, 남이 우러러 보는 삶의 형태 안에 있는 것만을 자랑삼고, 남을 가르치고, 예언을 하고, 병을 고쳐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애긍하고 봉사하고, 겸손한 척, 열심한 척, 똑똑한 척, 덕이 있는 척, 온갖 착한 일을 다하고 돌아다닌다해도,
내 안으로 들어가 내 안에 계신 아버지를 만나는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손을 잡고 그분께서 나를 참사람이 되게 하시려 마련하신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지 않았다면,
마지막 날에 그분은 반드시 "나는 너를 모른다." 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 마태오 18, 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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