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령과 축구공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1-07-13 조회수2,239 추천수12 반대(0) 신고

언젠가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축구시합을 할 때였습니다. 저는 다른 운동 종목들에 대해서는 골고루 흥미와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유독 축구는 잘 못하는 편입니다.

 

공격을 좀 해보려고 하면 다들 "여기서 얼쩡거리지 말고 가서 수비나 하라!"고 잔소리들을 합니다.

 

"좋아! 그럼 수비나 하지!"하면서 수비진영으로 가면, 또 다들 "수비에 방해되고 혹시 실수로 자살골 먹을 위험도 있으니 골대근처에 있지 말고 다른데 가 있으라!"고 하니 어디 마땅히 갈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하프라인 쯤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그날 따라 공이 제게 한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정말 오랜만에 제 앞으로 축구공이 굴러와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하면서, 뚜껑도 왕창 열렸겠다, 젖먹던 힘을 다해, 온갖 설움과 분노를 발끝에 담아 세게 찼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마침 축구공이 낡아서 튜브가 약간 밖으로 나와있었는데, 하필 제가 그부분을 세게 차는 바람에 축구공은 "뻥"하는 소리와 함께 펑크가 나버렸습니다.

 

바닥에 떨어져있는 축구공을 들어보니 안에 있던 튜브가 크게 찢어져 버렸고, 축구공이 하나밖에 없었던 우리는 더 이상 시합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다들 투덜대면서 일제히 저한테 그랬습니다. "오늘은 자살골도 안 넣고, 좀 조용히 넘어가는가 했는데, 결국은 일을 내셨내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시다."

 

어원을 따져볼 때, 성령이라는 히브리말을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또는 입김, 호흡, 숨결이라는 뜻도 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펑크가 나서 바람이 빠져버린 축구공으로는 축구시합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바람이 꽉 차 있어야 축구공은 공으로서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제대로 굴러가고, 또 그로 인해 모두들 재미있게 시합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에 있어서 가죽도 아주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보이지는 않지만, 공을 공답게 해주는 요소인 바람은 더 중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안에서 성령의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성령은 신자들을 신자답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신앙 생활 안에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도 바람이 다 빠져나간 축구공과도 같습니다. 이런 상태에서의 복음선포는 불가능합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나는 성당에는 줄기차게 다니지만 그냥 다닐 뿐이지, 아무런 의미를 못 찾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참으로 무미건조하고 형식적입니다. 기쁨이나 감사, 찬양, 은총이란 단어들과 제 생활은 정말 거리가 멉니다. 이런 제가 어떻게 감히 전교를 하고 성당활동을 하겠습니까?"

 

도대체 왜 그럴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그것은 성령 안에 생활하고 있지 않기에,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 살고자 노력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오셔서 어둠을 빛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신앙생활의 참맛을 알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세상의 어떠한 고통이나 유혹, 두려움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담대하고도 떳떳하게 예수님을 전하고 그분께서 걸어가신 길을 성실히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다시 한번 우리의 생활을 한번 되돌아보도록 합시다.

 

혹시라도 우리의 신앙생활이 성령이 빠져버려 쭈글쭈글해지고, 시들해지고 빛이 바랜 상태라면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는 펌프로 가득 채웁시다. 그리고 고백성사를 통한 참된 회개라는 또 다른 펌프로 바람을 가득 채워 성령 안에 생활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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