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님 말씀을 전하는 도구(연중 14주 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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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1-07-13 | 조회수1,820 | 추천수23 | 반대(0) 신고 |
2001, 7, 13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마태오 10,26-23 (박해를 각오하라)
이제 내가 여러분을 보내는 것은 마치 양들을 이리들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순박하게 되시오.
사람들을 조심하시오. 그들이 여러분을 의회로 넘길 것이요, 그들의 회당에서 여러분에게 채찍질을 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민족들에게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넘겨 줄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또는 무슨 말을 할까 걱정하지 마시오. 사실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그 시각에 여러분에게 일러 주실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아버지의 영이 여러분 안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비도 자식을 그렇게 할 것입니다. 또한 자식들은 부모를 반대하여 들고 일어나 부모를 죽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견디는 사람이야말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 도시에서 여러분을 박해하거든 다른 도시로 피하시오.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인자가 올 때까지 여러분은 이스라엘의 도시들 (전도)를 끝내지 못할 것입니다.
<묵상>
강론 원고를 쓰거나 이 곳 게시판에 묵상글을 올리려고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은 성서를 읽는 것입니다. 제게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지요. 그 다음 작업은 묵상, 삶(나의 삶, 이웃의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성서를 통해 주님께서 오늘 이 시간에 도대체 나에게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나를 어떻게 이끄시려고 하시는지를 음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묵상하고 성찰한 것을 토대로 원고를 써내려갑니다. 원고를 쓰기 전에 난해한 성서 구절에 대해서는 주석서를 읽어보기도 하고, 마음에 걸러지는 것이 없을 때 다른 분들의 강론이나 묵상 글을 읽어보기도 하지만, 내 자신이 자칫 주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전하는 살아있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말을 아무 생각없이 따라하는 앵무새가 될 수도 있기에 가급적 삼가하는 편입니다.
성서를 읽고, 말씀을 묵상하며 삶을 성찰함으로써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다음이 문제일 때가 많습니다. 글로 정리하는 것 말이지요. 솔직히 글을 잘 쓰는 편이 못되다 보니까,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가졌던 생생한 느낌이나 진한 감동을 쉽게 풀어쓰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사실 오늘도 그랬지요. 몇 번이나 썼다 지웠다...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사실 여러분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아버지의 영이 여러분 안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별 걸 다 걱정했다 싶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는데... 언제나 원고를 쓰다가 막히면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걱정할 것 없다고 자위하면서도, 그 때마다 답답하고 까마득하다는 느낌에 때로는 피를 말리는듯한 초조함에 휩쌓이곤 합니다.
왜 그럴까? 예수님의 말씀이 한갖 값싼 위로의 말씀은 아닐텐데... 그 날 그 날 들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아들일 마음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묵상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주님의 말씀과 내 삶이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의 인간적인 욕심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나를 도구로 하여 말씀하시도록 나를 열어놓기보다는, 뭔가 화려하고 멋진 어휘로 주님의 말씀을 꾸밈으로써 '말을 잘하는 누구' '강론 잘하는 누구'라는 말을 듣고 싶은 욕심 말이지요. 때때로 이 욕심이 주님의 말씀이 생생하게 퍼져나가는데 걸림돌이 되곤 합니다.
기왕이면 내 입을 통해 나아가는 말을 통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깊은 감동을 주며, 주님을 깊이 새겨놓을 있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제로서 주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하기 위해, 신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줌으로써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서도록 하기 위해, 기왕이면 표현 하나 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온갖 정성을 다해 강론 원고나 묵상 글을 작성하려는 모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불구하고 오늘 오랫만에 다시 묵상하는 예수님의 말씀, '여러분은 어떻게 또는 무슨 말을 할까 걱정하지 마시오. 사실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그 시각에 여러분에게 일러 주실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아버지의 영이 여러분 안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라는 말씀은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를 다시금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주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전하는 한에서, 성령께서 나를 통해서 말씀하시도록 나를 비우고 열어놓는 한에서, 나의 인간적인 노력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십니다.
행여, 나의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나를 통해 다른 이들을 향해 쉼없이 흘러넘쳐야 할 주님의 말씀이 빛을 바래지 않도록 나를 비우고 싶습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제의 참모습이니까요.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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