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풀코스 서비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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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1-07-14 | 조회수1,630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예수님 시대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가는 길은 강도들의 습격이 빈번한 지역이었습니다.
루가 복음사가는 "내려가다"란 표현을 썼는데,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예수님 시대 당시에도 큰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의 특징은 해발 약 800미터나 되는 고지대에 위치한 것입니다.
반대로 예리고란 도시는 예루살렘에서 상당히 떨어진 온난한 기후의 도시로써 천혜의 요새와도 같은 곳으로 해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루가 복음사가는 "내려가다"란 표현을 쓴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는 이 길은 산을 끼고 도는 아주 위험한 길이었기 때문에 산적들이 많이 은거해 살면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도질로 생계를 유지하곤 했었습니다.
바로 그 길을 걸어가고 있던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 아주 끔찍한 피해를 당합니다.
아마도 강도를 만난 그 사람은 돈을 뺏기지 않으려고 심하게 저항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서 겟돈 탄 것을 몽땅 다 털렸을 뿐만 아니라 심하게 맞아 상처가 심했습니다. 그리고 길에 내버려져 거의 초죽음상태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때 한 사제가 지나가다가 그를 발견했지만 피해서 지나가고 맙니다.
그리고 이어서 한 레위인이 지나가다가 그를 발견했지만 그 역시 그냥 자나가고 맙니다.
당시 예리고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레위인들이나 사제들이 모여 살던 도시였습니다.
레위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12지파 가운데서 하느님의 선택을 받아 제단에서의 봉사를 담당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사제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느님의 대리자로써 백성들을 대신해서 전례를 거행하던 이스라엘의 사제, 눈만 뜨면 사랑을 실천하라고 외치던 사제들이었습니다.
이런 거룩한 사람들, 하느님으로부터 선별되고 선택받은 사람들이 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물론 하루 직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레위인이나 사제가 피곤하기도 했을 뿐더러, 그들이 생각했을 때 그 강도맞은 사람이 완전히 죽어버린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당시 관습에 따르면 사제는 부정을 타지 않기 위해 죽은 시체는 만지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기에 그냥 지나치지 않았겠는가? 하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위인과 사제는 예수님의 질타를 받습니다.그들 역시 길가에 쓰러져 있던 사람을 가엾이 여겼겠지만 그 사람에 대한 걱정보다는 자신들의 안위를 더 생각했었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 있어서 전례 안에서의 예배와 실제 생활 안에서의 예배가 완전히 별개의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씀 따로 삶 따로의 생활이었습니다.
강도를 만난 그 사람이 거의 다 죽게 되었을 무렵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더러운 족속, 기분나쁜 족속, 혼혈, 잡종이었기에 만나면 욕하고, 침뱉고, 재수없어서 멀리 돌아가던 사람들이었던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갑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민족적 원수였습니다. 서로 상종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깊은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마리아 사람 하나가 강도 만난 사람을 발견하고는 6단계에걸친 사랑을 실천합니다.
1. 발견 2. 결심(가엾은 마음이 들어...) 3. 치료(가까이 가서 상처에 포도주를 붓고 싸매...) 4. 후송(자기 나귀에 태워...) 5. 간호 6. 에프터 서비스(여관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의 돈을 주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사마리아 사람의 봉사는 봉사 중의 봉사, 모든 봉사활동의 전형이라는 것입니다.
치료뿐만 아니라, 회복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맞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의 행동 하나 하나를 따라가 보십시오. 그의 행동 하나 하나는 참된 봉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는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습니다. 위험에 처한 어려운 인간이 어디에 있고 어떤 상황에 있는지,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즉시 연민의 정을 크게 느끼고 행동으로 옮깁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치료까지만 해주고 "이만하면 됐겠지?"하고 돌아갔을텐데, 그의봉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또한 그는 봉사의 대상이 어떤 사람인가를 따지지 않습니다. 국적이나 종교, 당파는 사마리아 사람의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 그 누구든 생명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의 봉사는 우리가 가끔씩 하는 조금 하다가 그만 두는 봉사, 겉치레 뿐인 봉사, 생색내기 위한 봉사, 적당히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봉사, 점수 따기 위한 봉사가 절대 아니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의 봉사는 참된 봉사였습니다. 끝까지 책임지는 봉사, 끝까지 최선을 닿는 봉사, 그러나 결코 드러내기를 원하지 않는 봉사, 보답을 바라지 않는 풀코스의 봉사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런 봉사를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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