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의 이웃과 웬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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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상선 | 작성일2001-07-16 | 조회수1,557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이웃과 원수
<누가 나의 이웃인가?>가 어제의 주제였다면 오늘의 주제는 <누가 나의 원수인가?>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이웃이 그냥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으로 벗이 되어준 사람, 즉 사제도 레위도 아닌 사마리아 사람이라면, 나의 원수도 그냥 나를 싫어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논리인 것 같다. 나의 원수는 오히려 가장 가까운데 있다. 내가 가장 사랑받아야 하는 사람, 내가 가장 하느님께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어야 할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정작 원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의 가장 큰 웬수는 나의 남편이요 아내일 수 있다. 나의 자식이요 부모일 수 있다. 나의 애인이요 선생일 수 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나를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하는데 방해가 되기 가장 쉽기 때문에 오히려 웬수가 되고, 나의 가장 큰 원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오히려 나의 가장 큰 이웃이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디에 있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들인 남편 때문에 또는 아내나 애인 때문에 또는 자식이나 부모 때문에 나는 만유위에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할 하느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기에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럴 땐 내 영혼의 원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섭고도 기가찬 가르침인가!
과연 나의 진정한 이웃은 누구이고 또 과연 나의 진정한 원수는 누구인가?
나의 진정한 이웃은 나의 영혼을 가장 살지우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일 것이고 나의 가장 큰 원수는 내가 하느님께로 가는데 방해꾼이 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그래서 심지어 부모 자식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영혼에게 진정한 이웃인 <영적 선물>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다른 영혼들에게 거짓 이웃, 즉 웬수인 <육적 선물>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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