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왈츠의 명수 예수 I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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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제병영 | 작성일2001-08-03 | 조회수1,635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왈츠의 명수 예수 II
왈츠의 두 번째 박자는 첫 박자 보다는 약한 것이다. 하지만 이 약한 박자가 없이는 첫 박자인 쿵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왈츠의 첫 박자는 스텝의 방향을 정해 준다. 첫 스텝을 부드러운 선으로 이어주는 것이 두 번째 박자인 것이다. 여체에 비유한다면 바로 허리의 곡선인 것이다. 이 곡선이 없다면 여체의 아름다움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두 번째 박자는 왈츠의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허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수는 자신과 이 두 번째 박자를 멋지게 맞춘 분이시다. 예수는 이 박자를 어떻게 맞추었는가? 첫 박자의 强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다음에 이어오는 박자가 弱이듯이 예수는 자신을 약하게 만들었다. 자신을 약하게 만든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비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예수는 왜 결혼하여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단란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없었겠는가! 왜 율사로서 그 시대를 풍미하고 존경과 권위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는가! 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생각한 메시아로서 권력을 지고 흔드는 왕으로서 혹은 독립투사로서 추앙을 받고 싶은 유혹이 없었겠는가! 그는 바로 이러한 것들을 포기한 것이다. 세인들이 이해하지 못한 길을 그는 선택한 것이다. 만약 그가 이것들을 선택했다면 자신이 왈츠의 첫 스텝을 추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을 온전히 비우는 작업을 피와 땀을 흘리며 하신 것이다. 이것은 끝없는 자신과의 투쟁이며 어느 누구도 동반해줄 수 없는 고독한 여정이다. 공생활 동안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많은 무리의 사람이 그를 따랐고, 생사고락을 함께 하기로 결심한 제자들도 있었다. 이러한 현실 안에서 인간 예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만일 우리 자신이 이러한 처지에 있었다면은 우리는 어떠한 것을 선택했을까? 아마 그 현실에 도취되어 모든 것을 움켜지려고 발버둥 칠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을 취할 때 자신이 파괴되고 어둠의 깊은 늪으로 빠져 든다는 것을, 일시적으로 힘을 얻을 수 있지만 영원한 생명을 주는 힘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꿰뚫고 있었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왈츠의 두 번째 스텝은 역설적인 자신의 비움인 것이다. 우리 가치관으로는 그것이 바보스럽고, 어리석고, 힘없이 보이지만, 그의 이러한 선택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 준 것이다. 철저한 배반의 연속이었던 자신의 수난을 침묵으로 일관한 그 힘 완전한 왈츠를 구사하게 했다. 그러므로 이천년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그의 모습은 항상 생생하게 그리고 끊임 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이 엄청난 힘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비우는 것이 손해 보는 것 같고 자신을 잃는 것 같아 도중하차하고 만다. 역으로 우리는 비우기 보다 채우기에 급급하다. 재물, 권위, 권력, 인정 그리고 사랑을 채우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총동원하여 질주하고 있다. 이웃은 이것들을 위해 희생되고 있다는 감각조차도 무뎌진 채 한없이 달리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 현실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예수는 바로 지금 "그것이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있고 하느님과 자신을 연결하는 아름다운 곡선을 잇지 못하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 예수님과 왈츠의 두 번째 스텝을 배워 아름다운 자신의 곡선을 만들어 봅시다.
제병영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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