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목수의 아들 or 사람의 아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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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상선 | 작성일2001-08-03 | 조회수2,009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문을 따지는 것은 당연한 듯이 여겨지는 일이다. 좋은 일이든 스캔들이든 항상 <뉘집 아들인가, 딸인가?> 하는 것이 입에 오르내리기 일쑤다. 미국사람이나 특히 북유럽 사람들은 아예 이름자에 뉘집 아들이란 것을 명시한다. ~son자가 바로 그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누구의 아들>이란 이름자를 선호한 듯이 보인다. 여기서는 사람보다는 자연이나 사물, 직업 등이 더 중요하게 등장한다는 것이 좀 다르다. 가령, 바르톨로메오, 바르티메오... 등 Bar~가 아들이란 뜻이다. 천둥의 아들, 바람의 아들, 위로의 아들...
오늘 복음에서 이스라엘 사람들도 예수를 목수의 아들, 요셉의 아들 등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 가문에서 무엇이 나올 수 있냐는 비아냥과 함께...
그런데 예수는 자신을 누구의 아들로 여기고 있었던가? 예수는 자신을 절대로 목수의 아들, 요셉의 아들, 마리아의 아들로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은 <누가 내 어머니며 형제들이냐?>는 화두에서 잘 드러난다. 예수가 좋아했던 자신에 대한 표현은 <사람의 아들>이었다. 이것이 나중에는 <하느님의 아들>로 발전한다. 사람의 아들과 하느님의 아들은 반대적 개념이 아니다. 사람의 아들은 누구의 아들이란 가문적 개념과는 달리 인류의 아들이라는 통칭적 개념이고 하느님의 아들이란 개념도 마찬가지로 통칭적인 개념이다.
예수의 위대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자꾸만 인연, 혈연에만 얽매여 서로를 분리시키면서 자신과 가문밖에 모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배타적이 되며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싸우는 꼴을 바라보면서 예수는 그게 아님을 강력하게 천명하고 나선 것이다. 우리는 가문과 신분, 집안에 따라 평가받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며, 한분 하느님의 자녀들이라는 것, 이러한 의식을 갖추어야만 기다리던 <하느님 나라>가 참으로 도래할 수 있다고 보신 것이다.
그렇다! 나는 뉘집 아들이고 뉘집 딸인가는 중요치 않다. 나는 사람의 아들이고 하느님의 아들이다. 그러기에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은 남이 아니라 나의 형제들이고 자매들이다.
연속극 제목처럼 <우리가 남인가요?> 아니다. 우리는 참으로 한 형제요 자매이다. 하느님이 우리의 아버지요 예수가 우리의 맏형인 그런 집안이다. 하느님과 종씨요 예수님의 가문이요 성모님의 가문이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교가 표방하는 인간관이요 가족관이며 하늘나라를 얻기 위한 구원관이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부처에게는 삼라만상이 부처로 보인다 하지 않았던가!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아들, 딸로 보일 때 구원은 이미 문밖에 와 있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바로 지금, 여기에 도래해 있는 것이다. 아멘.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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