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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혈육의 정(29)
작성자박미라 쪽지 캡슐 작성일2001-08-23 조회수1,819 추천수7 반대(0) 신고

 혈육의 정보다 하느님의 뜻이 더 큽니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더 진하다.’ 는 말도 있듯이 혈육의 정을 끊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기에 혈육의 정 때문에 십자가를 지는 일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보이지도 않는 분이시고 혈육은 너무나 가까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요즘 TV 드라마를 보면 사는 형편이 다르다고, 서로 걸맞지 않는다고 부모가 자식의 결혼을 반대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결혼해서 살고 있어도 자식이 고생하는 꼴을 볼 수 없다고 이혼하라고 종용하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서로 맞지 않는, 서로에게 힘든 일을 겪게 하는 그 과정에서 비로소 서로가 완전하여 질 수 있기에 그 둘이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입니다.

 

 저도 5개월이 넘게 살면서 십자가의 무게에 눌려 넘어지고 난 후 몸과 마음이 약해져서 몸살을 앓고 있을 때에(8월 15일) 다른 수녀원에 있는 사촌 언니가 느닷없이 찾아와 "모든 준비가 다 되었으니 우리 수녀원으로 가자!" 고 하였습니다.

 

 그곳은 저 스스로 ’남보다 더 교만해 빠진 나 자신의 껍질을 깰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라고 판단하였기에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래, 집안 식구 모두가 반대하는 이 곳으로 온 것은 나의 또 다른 교만심일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힘겨운 "내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인간적인 바램에 의한 합리적인 것같은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했습니다.

 

 정리할 것도 있고, 신부님께서 안 계신터라 인사도 해야겠기에 닷새 후에 나가기로 약속하고 언니를 보내고 짐을 다 정리한 후에 성당으로 가서 성체 앞에 앉았는데,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얘야, 네가 나와 하나되길 원해 ’십자가의 고통을 주십시오!’ 라고 해서 너에게 가장 적합한 이곳에 있게 하여 주었는데, 그래. 여기서 오는 고통이 싫다고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 가서 ’저 여기 왔습니다. 주님! 저를 사랑해 주십시오!’ 라고 내게 말할 수 있겠느냐?" 라고.................

 

 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까? 제가 아연실색한 꼴을 좀 보십시오!

그 때 주님께서는 보기좋게 저에게 한 방 먹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감히 그분과 맛설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제가 그 수녀원으로 간다면, 그때부터는 주님을 완전히 외면하고 사람들만을 상대하고 살기로 작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지요. 그 일은 마치도 결혼한 여자가 자기의 살과 뼈를 깍는 대상인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싫어 자신의 감정적인 면을 더 잘 채워줄 수 있는 상대를 찾아 이혼하는 것과도 같은 일입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길은 부모 형제, 세상 모든 편리함을 다 버리고 떠나온 길이 아닙니까? 이런 일로 인해 또다시 자신의 나약함을 뼈저리게 실감하며 그분 앞에서 머리가 조금 더 숙여질 수 있게 되었고, 저에게 주신 성소의 귀중함을 조금 더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언니를 따라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면 지금쯤은 자리가 잡혀 그곳에서 대우를 받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껍질을 썩히는 것을 포기하였기에 지금도 한 알의 밀알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를 내셨기에 우리의 은밀한 마음 속까지도 훤히 들여다 보시는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만이 아시는 일입니다...........

 

 한 알의 밀알로 많은 사람이 우러러보는 왕이 되는 것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거들떠 보아주지 않는 거지의 신세가 되더라도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먹이인 빵이 되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는 생활을 하였기에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해본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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