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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드뎌 복수혈전인가?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1-10-08 조회수1,831 추천수8 반대(0) 신고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말씀(요나 1,1-11; 루가 10,25-37)

 

하필이면 왜 사마리아 사람을 ’이웃 사랑의 모범’으로 제시하시는가?  하필이면 치유된 열 명의 나병환자 중에서 감사하러 온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이었다고 하시는가?(루가 17,11-19)  사람들의 의표를 찌르는 예수님의 作意的인 풍자는 정말 일품이시다.

 

독서에서는 요나가 주님의 명령을 피해 달아나다가 다시 붙잡혀 돌아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예언자가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피해 도망가려하는 것은 예레미야 예언자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그 이유는 차이가 있다.  

 

예레미야는 누구보다 사랑하는 자신의 동족들에게 응벌이 내릴 것이라는 이야기도 괴로운데, 자기의 나라를 침략하고 있는 적대국 바빌론으로 유순하게 끌려가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선포해야 하는 사실이 너무나 괴로워 도망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나의 경우는 니느웨(아시리아의 수도)에 가서 그들을 회개시키는 일이 그의 임무였기에 도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북왕국(사마리아)을 점령했을 당시, 그들의 끔찍스런 잔인성과 야만적인 행태가 대대로 전해져왔던 적대국의 대명사인 아시리아에 가서, 원수들을 회개시켜 주님의 징벌을 피할 수 있도록 자신이 앞장 서야 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주님의 손을 빠져나갈 수 없다면 바다에 몸을 투신해서라도 피하고 싶었을 만큼의 증오가 히브리 사람 요나의 피에는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물고기 뱃 속같은 그 시커먼 증오의 암흑 속에서, 죽음과 같은 고통 속에서 그를 건지시어 당신의 명을 실행하도록 만드신다.  요나가 참된 주님의 종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자신부터 새로운 몸으로 부활해야 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사마리아 사람과 유다인들은 서로 적대자들이 되었다.  유다인들이 바빌론에서 귀환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려 했을 때, 사마리아 사람들은 방해를 했고 페르샤에 유다를 침략하도록 모함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원인은 오랜 유다인들의 선민의식과 아시리아에 짓밟혔던 사마리아 사람들을 순수 혈통이 아니라고, 혼합 종교인이 되었다고 없신여기며 성전 재건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배척했던 적대의식이 먼저였던 것이다. 원래는 성조 야곱의 한 후예요 형제였던 그들이 서로 자기만이 옳다고 주장하던 사이, 철천지의 원수로 바뀌어버린 비극적인 현실 앞에, 예수는 다시 ’너희는 한 형제, 이웃’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 새벽부터 드디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고 있다는 뉴스가 계속 되풀이된다.  이제 ’손찌검을 당하지도 않은 사람들까지 일흔 일곱 배의 보복’을 가하겠다는 결의를 하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창세기 4장의 ’라멕의 노래’는 하느님은 7배의 복수를 자청하시면서까지 한 살인자(카인)의 피살을 막기 위해 부심하시는 반면, 아담의 7대 손인 라멕에 이르러서는 살인은커녕 자신의 몸에 손찌검을 한 사람에게조차 77배로 죽이겠다고 공언할 만큼 죄악이 잔인하고 냉혹해졌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성의 파괴는 드디어 홍수라는 심판을 불러일으키게 되었음을 이야기해주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라멕의 노래’이다.

 

언론은 무기 하나 하나의 가공할 파괴력에 대해 ’신나게’ 떠들고 있는데 그것을 가만 보고 있으면 인간의 고도로 발달된 지능과 능력에 잠시 자부심이 드는 착각을 경험한다.  ’와! 굉장한데...’  그러나 그것이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머리 위에 떨어진다해도 그런 감탄사가 나올까?  인간은 없고 기계들만 남은, 가상의 시뮬레이션으로 착시를 일으키고 있는 동안 우리의 인간성도 끝없이 파괴되어 가는 줄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홍수는 노아 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곱빛깔 무지개만 너무 믿고 사는 것이 아닌가?

원수도 없고 이웃도 따로 구분이 없는 세상이 바로 나, 또 하나의 요나의 손에 달려있다고 주님은 명령하시고 계신 것이다. 나의 이웃이 누구인가를 찾기 전에, 나의 원수는 누구인가를 살펴보고 그와 한 형제, 한 이웃이라는 사실을 찾는 오늘이 되어야 할 것같다.    

 

홍수를 대비하는 것은 노아 한사람에서 시작되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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