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공소회장님의 환상적인 성가선창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1-10-27 조회수2,685 추천수15 반대(0) 신고

본당에서 차로 30분 이상 걸리는 한 작은 공소에서 미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버린 한적한 바닷가의 공소는 참으로 초라해 보였습니다. 미사에 온 신자 수는 강아지까지 다 합해서 스무 명도 채 못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나이가 제일 어린 분이 50대 후반 쯤 되어 보였고, 대부분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셨습니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산 중턱에 위치한 공소는 손 본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마루바닥이 군데군데 꺼져있었고, 벽에는 금도 많이 가있었습니다. 몇분 참석하지 않은 미사에다가 할아버지 할머니들 밖에 안 계셨고, 성가반주도 없었습니다. 거기다 공소회장님께서 미사 성가를 선창하셨는데, 성가책에 나와있는 콩나물과는 전혀 관련 없는 성가를 창작해나가셨기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나름대로 고생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미사가 끝나갈 무렵, 제게 다가온 느낌은 참으로 감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의 성가는 음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불협화음의 성가였지만, 너무도 우렁찬 성가였습니다. 미사 시간 내내 볼 수 있었던 그분들의 표정은 너무도 진지했습니다. 그분들이 청했던 신자들의 기도는 참으로 겸손하면서도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아! 그래, 지금 주님께서 다시 우리를 찾아오신다면, 그곳은 모든 설비를 완벽히 갖춘 호화찬란한 대성당이 절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바로 이런 소박한 분위기, 이 겸손하고 순박한 영혼들이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 드리는 바로 이 곳으로 찾아 오실거야. 마치 2000년 전에 그랬듯이..."하는 생각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세리의 겸손한 기도를 높이 평가하십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잘 알기에, 그리고 그러한 나약함은 주님 자비 안에서만 해결됨을 잘 알기에 세리는 겸손되이 주님께 청합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하고 말입니다.

 

그 공소에서의 미사를 통해 저는 참으로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늘 작은 것보다는 큰 것, 구체적인 것보다는 허황된 것들을 추구해왔습니다. 인간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도 가까이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충실한 만남보다는 바깥사람들과, 보다 많은 사람들과 교제하기를 원했습니다. 아이들을 만날 때도 늘 질보다는 양을 따졌습니다."

 

하늘나라의 논리는 자주 우리의 인간적인 예측들을 여지없이 깨뜨립니다. 주님은 완벽한 사람, 인간들로부터 존경받고 우대 받는 사람, 자신의 능력이나 업적에 우쭐거리는 사람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부족함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일상적으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고 외치는 사람을 크게 칭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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