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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2-02-08 조회수1,678 추천수13 반대(0) 신고

연중 제 4주간 금요일 말씀(집회 47, 2-13; 마르 6,14-29)

 

사람들이 예수를 더러는 엘리야라고도 하고, 더러는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라고도 하였어도 헤로데는 자기가 죽인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틀림없다>’고 할 정도로 확신하고 있다. 그만큼 그의 마음 안에는 세례자 요한에 대한 죄책감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말이 되겠다.

 

그도 그럴 것이 본래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을 죽일 생각은 아니었고 오히려 그를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여 보호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간하는 말을 속으로는 괴로워하면서도 기꺼이 들어왔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내 헤로디아는 요한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원한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의 계략에 말려들고 말았을 뿐이었다.  

 

계략에 말려들었다 하면 헤로데의 죄가 가벼워지는 것일까? 생일자리를 빛내주러 춤을 춘 헤로디아의 딸에게 "네 소원을 말해보아라. 무엇이든지 들어주마. 네가 청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주겠다. 내 왕국의 반이라도 주겠다."는 맹세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왕으로서 있을 수 없는 발언이다. 자신의 왕국을 얼마나 하찮게 여겼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며, 그 발언은 또 얼마나 경박한가?

 

소녀가 제 어미의 코치를 받고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하였을 때, "왕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지만 이미 맹세한 바도 있고 또 <손님들이 보는 앞이어서> 그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 요한의 목을 벤 이유였다.

 

이 전승은 물론 역사적 사실은 아니라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헤로데 안티파스는 정치적으로 세례자 요한의 영향력에 두려움을 느껴 마케론트 요새에 감금해두었다 참수(斬首)했다 한다.  그러나 복음사가들은 당시 민간에 떠돌던 이야기를 복음서에 기록함으로써 좀 더 구체적인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나타나듯이 사람들이 요한에게 몰려드는 것이 두려워 요한을 해치는 헤로데의 모습은 복음서의 대목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즉 이 이야기 안에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과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

 

왕일지라도 헤로데의 옳지않은 행실을 간하는 ’세례자 요한’은 철저하게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마음 안에는 어떤 것이 옳은지 알면서도 사람을 더욱 두려워하는 헤로데는 결국 악을 행하고 만다.

 

어떤 삶이 가치있는 삶인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하는가? 비록 목은 잘렸으나 오직 하느님만을 두려워했던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 앞에서 거칠 것이 없이 자유롭고 당당했다. 인간을 두려워하는 헤로데는 그의 신분이 왕이었음에도 인간의 눈치를 보고 인간의 비위를 맞추기에 전전긍긍하는 정신적 노예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느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는 이는 결국 악을 저지를 수밖에 없고, 그런 이의 말로는 씻을 수 없는 죄책감으로 인해 늘 깜짝깜짝 놀라는(예수를 요한이라 생각하듯이) 비참한 운명임을 말해주고 있다.

 

오늘 복음에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까?  나는 누구를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무엇이 두려워 지금 멈칫멈칫 하고 있는가?  내 안의 두려움은 어떤 종류인지? 한번 잘 점검해보라는 말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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