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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길 사람의 속은...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2-02-20 조회수1,518 추천수6 반대(0) 신고

사순 제 1주간 수요일 말씀(요나 3,1-10; 루가 11,29-32)

 

어릴 때부터 가장 흥미있고 관심있는 예언자는 ’요나’일 것이다.  요나가 사흘 밤낮동안 죽지도 않고 들어있었다는 커다란 물고기의 정체도 그렇지만 거센 풍랑이 이는 검푸른 바다에 희생제물로 사람을 바쳤더니 풍랑이 잠잠하게 가라앉았다는 것도 어느 나라에나 있는 민담처럼 흥미진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나의 이야기도 그런 민담과 다를 바 없지만 그러나 전해주는 메시지는 전혀 다르다.  인생의 안전 운행을 방해하는 거센 풍랑, 인간을 못살게 구는 악한 짐승(용, 이무기, 구렁이 등)들을 제거하고 무찌르는 민담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용감한 의인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심청전처럼 누군가를 위해 자발적으로 희생을 마다 않는 도덕적 인물들이다.  

 

그러나 요나는 하느님께 임무를 부여받았으면서도 반대방향으로 도망쳤던 인물이었다.  왜일까? 임무가 막중해서 잠시 두려워졌을까? 그것이 아니다. 그가 도망갔던 이유는 원수의 나라를 회개시키기가 싫어서였던 것이다. 하느님이 그들을 구해주시기로 마음먹은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치 미국의 공격으로 초토화된 아프가니스탄의 예언자에게 미국을 회개시켜서 알라의 징벌을 피하게 해주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는 거부할 수 없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힘(물고기로 표현된)에 사로잡혀 임무를 수행해야 했을 때, 하느님의 메시지를 과연 어떻게 전달했을까? 아마도 마지못해...맥 빠진 소리로...겨우 알아들을 정도의 미미한 소리로 중얼거렸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잿더미가 된다!" (믿거나 말거나...)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가? 그 성의없는 작은 목소리에 온 니느웨 사람들은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굵은 베옷을 입고 단식하게 되었으며...임금도 용상에서 일어나 잿더미 위에 앉아 단식하였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모두 ’하느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고 나쁜 행실을 버리고 돌아섰다’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시게 되었다. (화가 잔뜩 난 요나의 억울한 심정과 그에 대한 하느님의 따듯한 가르침은 요나서 4장에서 만나보시길....)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기적을 보여달라는 군중에게 ’요나의 기적’ 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탄식하신다. 사실 요나처럼 무성의하게, 도망치듯 사명을 수행했어도 그처럼 많은 성과를 가져왔다면 어떤 예언자보다 더 위대한 예수님의, 어떤 지혜로운 설교보다 힘차고 놀라운 선포를 듣고도 더 큰 기적을 보여달라고 머뭇거리고 있을 수는 없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 자체가 그들의 악함의 증명이 되는 것이다. 즉 그들 스스로 심판 날에 증인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힘없이 외치는 한 인간의 목소리에는 온 나라가 들썩이며 반응을 보이고... 온 마음과 몸을 다 바쳐 말씀하시는 주님의 목소리에는 시큰둥하니... 정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를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마음대로 안되는 것, 그것이 사람 마음이다. 마음의 주인은 누가 뭐래도(하느님 까지도..)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의 책임은 커진다. 오늘 우리는 어느 쪽으로 마음을 열어 두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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