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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고통의 강 그 건너편에 서서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2-02-26 조회수1,757 추천수16 반대(0) 신고

2월 27일 사순 제 2주간 수요일-마태오 20장 17-28절

 

<예수께서 그 부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은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였다.>

 

 

<고통의 강 그 건너편에 서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속이 상하시는 체험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더욱 안타까우셨던 이유는 그 속상함이 다른 누구도 아닌 가장 사랑했던 제자들, 당신이 그토록 단단히 특별교육을 시켜왔던 제자들, 야고보와 요한으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야비하게도 이 두 제자는 어머니를 중간에 끼워 인사청탁을 하였습니다. "총재님! 총재님께서 차기 대통령이 되시거든 저의 두 아들을 하나는 국무총리, 하나는 국회의장이 되게 해주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인사청탁을 하는데 그냥 맨입으로 했겠습니까? 아마도 두 제자의 어머니는 한 이 백 만원 정도 되는 돈을 보따리에 싸들고 와서 인사청탁을 했겠지요.

 

그리고 이런 두 제자의 먼저 치고 나가는 불공정한 선거운동에 다른 제자들은 크게 화를 냅니다.

 

이런 두 제자의 속보이는 행동,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돈 보따리를 들고 찾아온 어머니, 또 별반 다를 바 없는 다른 제자들, 이들을 바라보던 예수님의 마음은 서글프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

 

"저 인간들! 내가 그렇게 설명을 했는데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저 야단들이구나. 아버지의 때는 이제 서서히 다가오는데, 언제쯤이나 저 친구들이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예수님은 뜬눈으로 밤을 세우셨을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 이 두 제자는 복음서에 아주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을 고려했을 때, 예수님의 여러 제자들 가운데서 가장 측근의 제자, 다른 제자들보다 더욱 빈번하게 예수님과 접촉했던 제자들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이 아직도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을 참아가면서 점차 십자가 죽음을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고 계시는데, 예수님의 가장 으뜸가는 제자들이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한 자리 차지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고통과 죽음을 거친 후에야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죽음처럼 쓰디쓴 잔, 도저히 마시기 힘든 고난의 잔을 끝까지 받아 마셔야만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과연 무엇을 추구합니까? 혹시라도 스치듯 지나가는 덧없는 육신의 안녕과 일시적인 쾌락을 위해 그분을 찾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아닌지요?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토록 건너기 싫어하는 고통의 강 그 건너편에 서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고통의 강을 건너는 동안 말끔히 정화되어 다시금 새 출발할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기다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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