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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슨 죄를 짜낼까?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2-03-23 조회수1,912 추천수13 반대(0) 신고

[어제 저희 구역의 합동 판공이 있었는데.. 마침 양승국 신부님의 고해성사에 관한 글을 읽다 보니 예전에 써놓았던 저의 체험담이 떠올라 옮겨봅니다.]

 

지겨운 판공성사표가 다시 나왔다. "무슨 죄가 있다고..." "교회를 위해 활동을 하고 신자들을 위해 이런 저런 봉사를 하고 이렇게 동분서주하면서 식구들을 챙기고, 나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지. 도대체 시간이 있어야 죄를 짓지... 내가 짓는 죄 정도야 사람이면 누구나 짓는 죄가 아닌가?" "그래도 성사를 안보면 기록에 올라갈테고, 보긴 봐야 할텐데 대체 무슨 죄를 짜내지?" 있는 투정 없는 투정 다하면서 죄를 짜내고 있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라디오를 켰다. 어느 방송인지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나긋하고 매혹적인 저음의 목소리에 빨려들 듯 귀를 기울였다.

 

"시래기 죽을 먹던 시절의 이야깁니다.  어머니는 식사 시간만 되면 상을 차려놓고 슬그머니 배가 아프다고 나가시고, 우리 여섯 남매는 시래기 죽을 서로 차지하려고 얼굴도 들지 않고 숟가락을 부산히 움직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늘 배가 아프다고 나가시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한 그릇이라도 더 먹이시려고 상이 물러나올 때까지 부엌에서 애꿎은 아궁이만 휘젓고 계셨던 것입니다."

 

"어쩌다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실 때면 다 찌그러진 판잣집이 누추하다며 황송해하시고는 얼른 구멍가게로 달려가 맥주 한병을 들고 오셔서 따끈~하게 데워주시던 어머니! "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지요. ’내가 죄가 많아서... 내가 죄가 많아서...’  자식이 굶어도, 자식이 병들어도, 자식이 월사금을 못내고 풀이 죽어도, 어머니는 모두가 당신이 죄가 많기 때문이라고 하셨지요. 따지고 보면 전쟁의 탓이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탓이고, 식구들이 너무 많은 탓이고, 피난살이 하던 모든 어머니의 공통된 설움이건만 유독히 어머니는 모든 것이 늘 당신의 죄 탓이라고 하셨지요. "

 

"이제 그 때의 어머니의 나이가 된 지금 되돌아보면, 어머니는 사랑이 많으셔서 죄가 많으신 분이었습니다. ...(한참의 침묵 끝에).......죄가 없다는 것은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많으면 죄가 큽니다."

 

조용하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로 시를 읊듯이 또박또박 말씀하시던 어느 신부님(나중에서야 짐작했지만)의 나직한 말씀이 죄를 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의 뒤통수를 후려쳤습니다.

 

"죄가 없다는 것은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말씀이 자꾸만 떠오르며 나의 눈엔 어느새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래, 내가 사랑을 잃어버렸구나. 어서 성사보러 가야지."

 

그러나 다른 볼일을 보느라고 그 생각은 곧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저녁이 되어 다시 부엌으로 식사 준비를 하러 들어가면서 라디오를 켰습니다.

"시래기 죽을 먹던 시절의 이야깁니다. ........................"

 

얼마나 놀랐는지요. 아침에 내 머리를 치던 그 말씀이 다시 그 부분부터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평화방송의 ’일일 묵상’이 재방송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희 집에서 평화방송의 주파수가 잡힌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고 저는 그 후부터 그 방송의 애청자가 되었습니다만 그 날의 방송은 여느 방송과 같지 않은 하느님의 전언으로 들렸습니다.

 

"죄가 없다는 것은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많으면 죄가 큽니다." 온 몸의 힘이 빠지고 더이상 일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오! 하느님! 제가 무엇이기에 공중 전파까지 이용하여 저를 깨우쳐주시려 애쓰십니까? 그것도 한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죄가 없다고 완강히 버티고 있는 저를 불러 굳이 씻어주시려는 당신의 의도가 무엇입니까? "  하느님의 사랑이 온 몸에 느껴지면서.... 생각지도 않았던 죄들이 머리 속 가득히 떠올랐습니다.

 

엉터리 없는 봉사로 자만했던 죄.  교회를 위해, 사람들을 위해 한다고 하면서도 실은 자신의 공명심을 위해 능력을 뽐내려 했던 죄.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을 은근히 시기하고 기회만 되면 깎아 내리려 했던 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고 이해해 주지 않는 사람을 미워하고 멀리했던 죄. 그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모르게 아프게 했던 죄. 그 잘난 일을 한다고 돌아다니며 식구들에게 소홀히 했던 죄.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감사하며 살지 못한 죄. 그러면서도 결백하다고 교회 법을 비판하며 나의 게으름과 교만을 합리화하려 했던 죄등........ 밀물처럼 많은 죄들이 봇물터지듯 눈물 샘으로  넘쳐흘렀습니다.

 

실컷 울고 나니 흐르는 눈물로 벌써 그 많은 죄가 빠져 나간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제야말로 겸손한 마음으로 신부님을 찾아가 고해하고 나왔을 때 "평안히 가라"하는 주님의 말씀이 마음에서 들려오고.... 발걸음은 너무나 가벼워 날라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아! 주님이 내게 주시려던 선물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그렇습니다. 고해 성사의 은혜가 바로 ’평안’이며 ’기쁨’이며 ’새로운 출발’이라는 것을 찐하게 체험했었죠. 벌써 한 칠팔년전이 되었을까요?  저는 그 방송에서 흘러나오던 누구신지도 모르는 신부님-아니, 주님의- 목소리를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목소리였죠. 그리고 저처럼 죄를 짜내려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혹시 오늘도 죄를 짜내고 있는 분은 안계신가요? 죄가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은 하느님 사랑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되찾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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