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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빚진 자
작성자김태범 쪽지 캡슐 작성일2002-04-24 조회수1,694 추천수7 반대(0) 신고

부활 제4주간 수요일 (2002-04-24) - 야곱의 우물에서

독서 : 사도 12,24-13,5ㄱ 복음 : 요한 12,44-50  

 

  

[빚진 자]

 

그때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뿐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까지 믿는 것이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도 보는 것이다.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단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을 단죄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를 배척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단죄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세상 끝날에 그를 단죄할 것이다.

 

나는 내 마음대로 말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어떻게 말하라고 친히 명령하시는 대로 말하였다.

 

나는 그 명령이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나 아버지께서 나에게 일러주신 대로 말하는 것뿐이다.”

 

                                       (요한 12,44-50)

 

 

단죄는 죄를 묻는 것, 잘못에 대해 벌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죄를 하러 오신 분이 아니다. 성서 어디를 봐도 예수님은 벌주고 처벌하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용서하기 위해서 오셨다.

 

죄가 있는데도 죗값을 묻지 않고 용서해 주신다. 이 용서를 통해 우리는 주님께 큰 빚을 지게 된다. 부채를 떠안은 것이다. 부채를 지고 있을 때 마음의 부담이 크다. 바로 ‘부채감’ 때문이다.

 

20여년을 노동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한 노동운동가는 지금 자신의 활동과 삶은 이 부채감 때문이라고 한다. 80년 5월에, 광주학살의 진상을 폭로한다며 투신자살한 친구의 죽음 앞에 다 갚지 못할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군사정권이 수백·수천 명을 죽이고 있는데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외치며 죽어간 친구. 처절하게 절규하며 아스팔트 위로 몸을 날리는 동안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 부채감이 아직까지도 가위눌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그 부채감에 답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살아가는 최소한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나는 예수님을 생각하면 부채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제부터는 떨쳐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은 나 자신을 옥죄고 있는 사슬이 아니라 스스로 올바른 길을 선택하기 위해, 주님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되묻고 또 되묻는 자신에 대한 채찍질로 삼아야 하리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빚지는 일이다. 보이게 보이지 않게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살아가니까. 그렇다고 내가 마땅히 도움받을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 혼자 편하자고 부채감을 벗어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허우영 신부(광주대교구 선교사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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