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가(戀歌)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2-07-22 조회수1,400 추천수12 반대(0) 신고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아가 3,1-4: 요한 20,1-18)

 

요즘은 눈물 둑이 터졌는지, 늙어가는 징조인지 걸핏하면 눈물이 넘쳐 흐른다. 며칠 전 피정 때에도 그랬다. 각자 헤어져 마음에 드는 곳에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홀로 묵상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는 일행이 보이지 않는 산 중턱 소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 커다란 타올까지 푹신하게 깔고 아주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산을 올라올 때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자연 속에서 푸른 하늘을 보고 누워있다 가려고 마음먹었다.

 

정말 그랬다. 얼마만인가? 조용한 숲 속에서 아무도 방해하는 이 없이 혼자만의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심호흡을 하고, 날아다니는 나비를 관찰하고, 소나무 옆에 핀 귀여운 버섯의 감촉을 느껴보았던 것이... 솔잎 푹신하게 떨어진 숲길을 걷는 맨발의 감촉. 갑자기 오랜만에 갖는 시간이 너무도 소중해졌다.

 

문득 이 시간, 저 숲길로 사랑하는 사람이 걸어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가서가 읽고 싶어졌다. 신부는 물론 나다. 신랑은 예수님, 그리고 합창단의 노래는 풀벌레 소리, 새 소리. 혼자서 일인 삼역 하며 아가서를 천천히 읽어나갔다.

 

세상에 어떤 애인과 그같은 사랑을 나눌 수 있으랴? 허기를 채워줄 사랑 찾느라 수없이 흘려보낸 방황의 시간들, 헛수고들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거뭇거뭇 빈약한 나를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보아주시는 그분의 속삭임에 눈물이 솟구치고, 그렇게 기다리고 그리워했으면서도 그분이 정작 문 앞에 서서 기다리는데 ’속옷을 다시 입어야 할까요?’ ’흙을 다시 묻혀야 할까요?’ 하며 망설이기만 하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그분 앞에서 아직도 가리울 무엇이 남았으며, 아직도 갖추어야 할 무엇이 남았더란 말인가?

 

머뭇거리는 사이 그분을 놓쳐버리고 그제야 이 거리 저 장터를 돌아다니며 임을 찾아 밤새 헤매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나의 모습도 그곳에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임 못 보셨소?" 어느새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 넘쳤다.

 

이제는 그만 찾아다녀야 한다. 이제는 그만 울어야 한다. "누군가가 제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도 오늘 복음에서 울기만 하고 있다. 바로 뒤에 그분이 서 계시는 데도 그분을 찾고 있다.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면서도 그분이신 줄 모른다. 눈물이 범벅이 되면 그분이 곁에 계셔도 알아볼 수 없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불러주실 때야 "라뽀니!" 하고 비로소 알아보았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것은 인격적인 만남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친밀함이다. ’라뽀니’는 평소 그분을 불렀던 애정어린 호칭이었다. 마치 목자가 양 하나 하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듯 마리아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분을 비로소 알아본 것이다. 사랑만이 그분을 알아보게 한다.

 

이제 눈물을 거두고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그분을 돌아다 보아야 한다. "나의 동산에 있는 이여, 나의 벗들이 듣는 그대의 목소리, 나에게도 들려다오."(아가8,13) 님을 찾아 사방을 찾아 헤매던 목소리, 이젠 오로지 당신에게만 들려달라는 애절한 연가를 오늘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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