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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머니에게 돌팔매질하던 스님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2-07-23 조회수1,675 추천수8 반대(0) 신고

연중 제 16주간 화요일 (미가 7,14-20; 마태 12,46-50)

 

예수님을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들은 문전박대를 당한다. 이 장면을 전하고 있는 공관복음의 각 대목을 살펴보면, 루가 복음 사가는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는 예수님의 말씀을 슬쩍 빼버렸다. 루가 복음사가는 성품이 온화한 분이셨던 듯, 베드로 사도를 꾸짖는 예수님의 말씀도 슬쩍 뺐다(마태 16,21-23; 마르 8,31-33; 루가 9,18-22 비교)

 

루가복음사가는 그 말이 예수님의 인품에 손상이 간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성모님과 베드로 사도를 생각해서 삭제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루가복음이 더 사실에 가까운 것일까?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예수님께서는 마르꼬와 마태오 복음처럼 단호하게 가족들을 쫓으셨을 것 같다.  

 

어떤 스님의 어머님이 출가한 아들을 찾아 물어 물어 금강산까지 오셨다. 어머니를 본 아들은 산 위에서 어머니를 향해 돌을 던져 쫓아버렸다. 스님은 큰 스님이 되어서도 속세에 버리고 온 아내와 자식을 평생 돌보지 않았다. 어렸을 때 이 말을 듣고 그런 비정한 사람이 설사 도를 깨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반발이 생겼다.

 

그러나 진리, 도(道), 수행, 이런 거창한 뜻은 다 비껴두고라도 가족들을 단호하게 관리하지 못해 사적(私的)으로나 공적(公的)으로나 커다란 비극을 초래하고 신뢰를 잃어버린 국가 지도자들 몇 분을 거치면서야 어머니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스님의 법문을 알아들을 것 같다.

 

그렇다. 예수님의 비정한 일면에서 그분의 인품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어머니 마리아의 위상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관심사가 아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당신의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분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그분의 관심은 오로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였고 ’그분의 뜻’(50절)이었다. 마태오복음에서의 예수님의 최초의 발설(發說)의 내용은 ’아버지가 원하시는 일’을 이루는 것(3,15-세례 때)이다. 아버지의 뜻을 가로막는 것이라면 심지어 당신 자신조차도 묵살해주길 원하셨다.(26,40-겟세마니 기도) 이처럼 공적 생활의 최초의 순간에서부터 최후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뜻만을 생각하시던 분이었다. 그러기에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분의 형제요 자매요 심지어는 어머니라고 하시는 것이다.

 

공적인 지도자는 이래야 한다. 세상을 이롭게 할 큰 뜻을 펼치고 세상을 경영하고 싶어하는 인물은 먼저 자신의 친지들, 친척들, 가족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단호하게 관리하고 경영할 능력부터 갖추어야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세속의 지도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일까?

 

선승(禪僧)들처럼 속세를 등지고 살 수는 없지만, 교회의 성직자들도 이런 면에서까지 예수님을 닮아야 하지 않을까? 본당에서 가장 골치 아픈 신자는 모모하는 신부님, 수녀님들의 부모형제라는 이야길 신자들, 사제들에게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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