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잘 보고 잘 듣기(10/5)
작성자오상선 쪽지 캡슐 작성일2002-10-05 조회수1,607 추천수17 반대(0) 신고

"복되어라, 여러분이 보는 것을 보는 눈은!

사실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예언자와 임금이

여러분이 보는 것을 보려고 했으나 보지 못했고,

여러분이 듣는 것을 들으려고 했으나 듣지 못했습니다."(루가 10,23-24)

 

당신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소문으로 겨우 들었었는데,

이제 저는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리하여 제 말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티끌과 잿더미에 앉아 쥐우칩니다.(욥 42,5-6)

 

 

<잘 보고 잘 듣기>

 

나이가 들어갈 수록

눈이 침침해지고 흐려져서

안경을 써도 불편하다.

자꾸만 눈꼽이 더 많이 끼는 것같아

눈도 더 자주 끔벅거린다.

귀도 조금씩 어두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듣는데 관심이 없어져서 인지

남의 말을 잘 못 알아들을 때가 많아진다.

 

성서의 말씀 중에

유별나게 보고 들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미사에서

말씀의 전례는 바로 들음의 예절이고

성찬의 전례는 바로 봄의 예절이 아닐까?

말씀의 전례가 성찬의 전례를 통해 완성되고

성찬의 전례가 말씀의 전례 없이 가능치 않듯이

그렇게 듣고 봄은 한데 어우려져 있는 가치일지도 모른다.

 

주님께서는 오늘

당신 제자들에게

지금 보고 있는 그 눈이 복되고

지금 듣고 있는 그 귀가 복되다고 하신다.

그 의미는

주님을 볼 수 있는 그 눈이 복되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그 귀가 복되다는 것이리라.

 

수많은 고초를 겪은 욥 또한

이제서야 고백한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소문으로만 겨우 들었을 뿐이었는데

이제서야 눈으로 주님을 뵈었노라고...

 

따라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같다.

주님을 제대로 뵈올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확히 듣는 귀가 필요하다는 것.

제대로 못 알아들으면

주님을 제대로 바라 뵐 수도 없다는 것.

 

우리의 최고의 목표가

하느님을 맞대면하는 지복직관의 경지라면

예수님을 맞대면한 제자들이나

주님을 뵈었노라고 고백하는 욥은 그 경지에 이르렀기에 복되리라.

이 지복직관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확히 알아들을 귀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욥은 주님을 제대로 알아들을 귀가 없었기 때문에

헤맬 수 밖에 없었고 수많은 갈등과 회의 가운데 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제대로 알아듣게 되면서

눈으로 주님을 확실히 알아뵐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님, 당신을 뵙고 싶습니다.

그러기에 먼저 당신을 제대로 알아들을 귀를 주십시오.

당신 말씀을 똑바로 알아듣고 곡해하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그래야만 제 눈이 열리어 당신을 뵈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육신의 눈이 먼 장님 상태에서

주님을 제대로 보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았다.

장님의 상태에서 어떻게 주님을 보고 자연을 볼 수 있었을까?

육신의 눈이 아무리 침침해져도

영혼의 눈이 맑으면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장님은 청각이 발달되어 있다.

눈을 감고 들어보자.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귀기울여 들어보자.

그것이 들려야,

그것이 그 어떤 아름다운 음악소리보다도 맑고 아름답게 들려야

주님을 뵈올 수 있으리라.

 

오늘

특별히 <들음의 날>로 지내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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