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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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을 증거한 소경
작성자정병환 쪽지 캡슐 작성일2002-12-24 조회수1,134 추천수2 반대(0) 신고

예수께서 눈을 띄여준 소경이 있었다. 유다인들은

"너는 그자(예수)의 제자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이다.

우리가 아는대로 모세는 직접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지만

그자는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른다" 하고 말하였다.

그는 이렇게 대꾸하였다. "분명히 내 눈을 뜨게 하여 주셨는데

그 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른다니 이상한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의 청은 안들어 주시지만 하느님을 공경하고

그 뜻을 실행하는 사람의 청은 들어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여준 이가

있다는 말을 일찌기 들어본 적 있습니까? 그분이 만일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아니라면 이런 일을 도저히 하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섭리에는 시대성이 있습니다.

구약에는 그 시대에 맞는 말과 섭리가 있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차가 없던 시절에는 걸어다니거나 말을

타고 다녔습니다. 그 시대에 쓰던 용어도 지금의 용어와

달랐습니다. 주로 쓰이는 말이 당시에 쓰던 생활도구와 연관된

것이었습니다. 농경시대와 산업사회의 생활풍속은 확연이 다릅니다.

지금은 기름과 엔진등 새로운 언어들이 쓰이고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문명이 다르듯 섭리가 발전해 오면서 시대마다

하느님의 뜻이 다르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모세를 중심삼고 섭리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예수님을 중심한 새로운 섭리가 있었습니다. 모세의 제자들은 과거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새로운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박해하였습니다. 소경이 되었다가 눈을 뜬 사람은 새시대를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아니면 어떻게 소경의 눈을 뜨여 주겠습니까.

섭리에는 분명 시대에 따라 그에 맞는 방식이 있습니다. 이것을 섭리의

시대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시대에는 오늘에 맞는 섭리

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만 매달리면 새것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소경이었던 사람의 주장도 들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와 뜻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의 뜻을 묵살하는 것은 좋은 자세가

아닙니다.

 

<p><a href="http://cafe.daum.net/hanenim">카페: 하느님의 말씀연구회</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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