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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3-02-15 조회수1,299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제5주간 토요일 말씀(창세 3,9-24; 마르 8,1-10)

 

날이 저물고 선들바람이 불 때, 주 하느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는 눈에 뜨이지 않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최초의 친밀하고 평화로운 관계가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너 어디 있느냐?"

이것은 숨어있는 아담에게 뿐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자기 본위대로 살아가려는 모든 인류에게 오늘도 줄기차게 던져지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다. 하느님의 눈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양심에서 울려오는 그분의 음성을 외면하는 이들을 향해 오늘도 애타게 찾고 계시는 부르심이다.

 

"당신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하느님과 같은 초월적 위치를 탐냈으나 결과는 흙으로 빚어진 자신의 허약한 육체, 즉 한계를 깨닫게 됨으로써 이제는 절대자 앞에서 한없는 초라함과 비참을 마주 드러내기 어렵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아담은 더 이상 하느님과 함께 있지 못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친밀했던 동료와도 일치하지 못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서로의 관계는 분열된다.

뿐만 아니라, 아담은 "당신이 저에게 짝지어 주신 여자가" 열매를 주었기에 먹었을 뿐이라며 최종적인 책임을 하느님께 돌리고 있다. 하느님께서 여인을 창조하셨을 때 질렀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라던 탄성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여기서 성서저자는 죄라는 것의 본질적 특성을 이야기한다. 죄란 하느님을 믿지 못하여 그 친밀한 관계가 깨지는 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다른 피조물) 사이에 존재했던 조화와 일치가 점차적으로 깨어지는 확산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하느님의 판결(14-19절)은 인간의 일상 삶에서 부딪히는 근본적 문제, 즉 노동, 출산, 죽음 등에 대한 원인론적 해석으로 볼 수 있다.

 

먼저 뱀은 죽기까지 배로 기어다니며 흙을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물론 뱀이 처벌받기 전에는 다른 상태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서저자는 고대 근동 지방에서 널리 퍼져있던 뱀 숭배 사상에 대해, 뱀은 하나의 피조물로서 아무런 힘도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다. 뱀이 어떤 악마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보는 경향은 아주 후대의 해석이므로, 창세기를 쓴 저자의 원래 의도에는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 맺어진 현실적인 원수 관계는 하느님의 구원 행위 못지않게 악의 존재 역시 신비스러운 베일에 가려져있음을 암시한다. 원조들의 범죄 이후로, 악은 인간을 파멸시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인간은 끊임없이 이 세상 안에서 악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궁극적인 승리는 인간에게 있음도 알려준다.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이 내용을 보다 깊고 넓은 차원에서 해석하였는데, 교부들은 여인과 여인의 후손에 대한 언급을 세상을 구원하실 구세주에 대한 예언, 즉 최초의 기쁜 소식(원복음)으로 이해하였다.

 

"따먹으면 죽으리라." 했던 하느님의 말씀은 그대로 엄하게 집행되지 않고, 먼저 구원의 약속부터 해주신 후, 인간의 선고가 내려진다. 굳이 말하자면 감형된 것이다.

 

여자에게 내겨진 벌은 아기를 낳을 때의 진통과 남자에게의 종속이다. 최초에는 동등한 친구요 동반자였던 위치에서 불평등한 종속의 위치로 하강되었다. 남자에게 내려진 벌로서 아담은 자기의 근원인 흙을 저주받게 했으므로, 흙도 그에게 협조하지 않게 되었다.

 

여기서 야휘스트는 현실적으로 받고 있는 남녀의 불평등한 관계는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임신과 출산의 기쁨과 축복은(1, 28=축복의 결실) 왜 고통과 무거운 짐이 되었는가? 남자들은 왜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노동하고 투쟁해야 하는가? 라는 인간 실존에 대한 해명을 원인론적으로 해설하고 있는 것이다. 범죄 이전엔 그런 것들이 없었는가? 아니다. 그러나 범죄 때문에 인간 실존의 의미에 변화가 일어났고, 그 결과 기쁘고 즐거웠을 노동과 출산 등이 고되고 힘든 고역으로 바뀌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창조주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범죄의 결과인 것이다.

 

이제 이렇게 모든 실존의 의미가 달라지게 됨으로써, 사람의 생존 기간은 고통과 노역의 시간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죽음은 하나의 처벌이라기보다 그의 힘든 생애를 끝내주는 자비의 선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동료 인간 사이의 지배적 구조에서 생겨나는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 죽을 때까지 힘들게 이어지는 삶, 저주받은 대지, 이 모든 절망 속에서도 하느님은 인간을 거두어주신다.

 

무화과 잎으로 엉성하게 만든 가리개 대신 두툼하고 질긴 가죽옷을 입혀주심으로써 그들의 초라함을 가리워주시는 하느님. 당신 앞에서 더 이상 떳떳이 마주 할 수 없는 그들이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원한 고통 속에 살아가지 못하도록 낙원에서 내 보내신다.  

 

성서저자는 고대 사회의 신화적 우주관이나 낙원, 생명나무, 뱀, 불칼 등의 각종 표상들을 사용하여 하느님은 다른 신화에 나타난 신들과는 전혀 다른 신이심을 옛날 이야기의 형식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즉 하느님은 다른 신들처럼 인간의 성장을 방해하고 두려워하는 신이 아니며, 인간은 신들의 노역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하급 피조물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인간이 처하고 있는 실존의 불합리한 요소와 조건은 하느님의 잘못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면서도 그럼에도 하느님은 그 인간들에게 끊임없는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분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야휘스트의 고백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단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그 하느님의 모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확연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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