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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납득이 안가는 하느님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3-02-18 조회수1,727 추천수7 반대(0) 신고

연중 제 6주간 월요일 말씀(창세 4,1-15.25: 마르 8.11-13)

 

성서저자는 아담과 하와에게서 시작된 죄가 어떻게 확산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죄란 윤리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을 불신하는 것이며, 인간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깨어진 관계는 인간들의 관계에서도 가장 가까운 데서부터 점차적으로 분열이 확산되어 간다는 것을 전하고자 한다. 즉 아담과 하와의 부부간에서 카인과 아벨의 형제간으로, 또 카인의 후손인 라멕에 이르면 그 폭력성의 질과 양은 극에 달하게 되는 것이다. "카인을 해친 사람이 일곱 갑절로 보복을 받는다면, 라멕을 해친 사람은 일흔 일곱 갑절로 보복받으리라."(4,24)

 

사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위에 밝힌 대로 죄(폭력)의 과정과 결과, 하느님은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고 계시는가가 주제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다른 문제에 더 매달릴 때가 있다. 즉 ’카인은 왜 동생을 죽이게 되었는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카인은 아벨을 질투하여 동생을 죽이게 되었다? 과연 그럴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카인의 분노의 대상은 아벨이 아니다. 하느님이다. 하느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아들이시고 자기의 제사를 받아주시지 않은데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추적해 볼 때 우리는 자칫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즉 카인의 제물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원적인 문제는 ’하느님의 선택’의 자율성의 문제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선택에는 우리가 납득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카인의 우(愚)’를 범할 수 있다. 즉 카인의 제물에 결함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은... 그러나 성서 본문에서는 그것에 대해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현실로 눈을 돌려보자. 하느님은 정말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근거로 사람들을 선택하시며 인간에게 만족할 만한 합리성으로만 일을 하시는가?

 

사실, 이 대목을 쓴 야휘스트는 솔로몬 시대의 저자로서 가나안 땅에 들어와 터를 잡고 살고 있던 백성들에게 가나안의 농경문화보다 자신들의 전통 유목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와 솔로몬의 왕위 계승을 정당화하려는 역사적 동기도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백성들이 가나안의 의식과 종교를 동경하고 숭배하지 못하게 경계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결정(선택)은 인간적 서열이나, 재능의 정도, 재산의 유무, 지위의 고하, 혈통과 가문에 상관없이 당신의 온전한 자유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근본적인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납득하지 못하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할 때, 마치 복음에서 하느님의 인정을 받은 표를 받아들일만한 기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바리사이파와 같게 될 것이다.

 

납득 안가는 하느님!  아무 징표도 안보여주시는 하느님!

그럼에도 내가 잘못이 없다면 그분의 앞에서 얼굴을 들고 서 있어야한다(아담처럼 카인처럼 숨지말고..). "네가 잘했다면 왜 얼굴을 쳐들지 못하느냐?" 얼굴을 쳐들라는 표현은 얼핏 카인이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고개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앞절엔 분명 카인이 고개를 떨어뜨린 이유는 ’몹시 화가 나서’라고 명시되어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카인에게 죄로 이끄는 그 분노의 굴레를 씌우라고 호소하시는 것이다. 제물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택에 반기를 드는 그 마음이 잘못된(7절) 것이다.

 

하느님의 선택은 하나를 취하고 하나를 버리는 우리의 선택과 같지 않으시다. 야곱을 선택하셨으나, 에사오에게도 풍족함을 마련해주셨고, 이사악을 선택하셨으나 이스마엘도 보호하시는 하느님이시다. 아벨을 선택하셨으나, 동생을 죽인 카인도 ’일곱 배의 보복’을 약속하시며 표를 찍어주시면서까지 지켜주시는 분이시다. 어쩌면 하느님의 선택은 하느님만의 계획이 있으신 선택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납득이 안가는 주님>을 믿고 그분의 자율권을 존중해 드려야한다.

우리는 수많은 주변의 아벨을 질투하며 스스로 죄의 굴레에 목을 디밀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아무런 요구없이, 의심없이 믿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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