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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죄인을 부르심
작성자이평화 쪽지 캡슐 작성일2003-03-08 조회수1,344 추천수2 반대(0) 신고

예수께서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나는 의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나는 내 사제들이 생명력이 가득하기를 원한다

 

 나는 내 사제들이 내 구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한다. 나는 그들이 나와 같이 갈바리아산에 있기를 원한다. 많은 사제는 내가 고통스럽게 올라가는 것을 따르기를 거부한다. 나는 내 사제들이 기도하고 성체 안에서 나와 함께 행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어떤 사제들은 제단 위에 내가 실제로 있는 것을 믿지도 않고, 어떤 사제들은 나를 소홀히 하고 잊어버리며, 어떤 사제들은 -새로운 유다- 나를 배반한다. 나는 내 사제들이 영혼들 안에 내 나라를 건설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내 나라를 약탈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치는 않는다.

 

 나는 영원으로부터 내 사제들을 무한히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사랑을 원한다. 사랑의 넋은 고통이다.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는 만큼 사랑한다. 그러나 오늘은 많은 사제가 고통을 피하고, 따라서 사랑을 피한다.

 아들아, 나는 내 사제들이 내 신비체 안에서의 그들의 역할을 알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의식하기를 바란다. 나는 그들이 생명력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은총과 믿음과 사랑으로, 따라서 고통으로 진동하기를 원한다.

 내 신비체 안에 얼마나 많은 시간 낭비가 있고, 행하지 않은 선이 얼마나 많으며, 방해와 장애가 얼마나 많으냐! 초자연적인 것을 얼마나 많이 허비하느냐!......

 그것은 많은 사람이 믿음과 바람과 사랑의 뒷받침을 별로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두움 속을 더듬더리며 가는 불쌍한 내 사제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회개를 원한다. 그러니 너더러 그들을 위해 좀 고통을 당하고 기도하라고 부탁하는 것을 네가 이상히 여기겠느냐?

 

 

나는 너희들이 너희의 사명을 의식하기를 원한다

 

 나는 특별한 사랑으로, 큰 사랑으로 너희를 골랐다.

 나는 내 사제들이 상징적이 아니라 실제적인 내 제헌에 그들이 참여한다는 것을 의식하기를 원한다. 여기에는 내 고통과 그들의 고통의 일치와 융합이 내포된다. 외부적인 허례가 아니라 찬란하면서도 무서운 현실, 미사성제 말이다!

 사제는 내 아버지께 드리는 내 제헌에서 나와 일치해야 한다. 이 지식이 없고 이 신념이 없는 사제가 드리는 저 미사는 무엇이란 말이냐?

 아들아, 내가 내 사제들에게 어떤 품위와 어떤 위대함과 능력을 주었는지 생각해보아라! 빵과 포도주를 나 자신으로,

내 몸과 내 피와 나 자신 전체로 실체 변화시키는 권한을.

그들의 손에서 날마다 강생의 기적이 되풀이 된다.

 나는 사제들을 구속의 신비의 숭고한 결과들을 맡아 가지고 나누어주는 사람으로 정했다. 나는 그들에게 사람들의 죄를 사하거나 맨채로 두거나 하는 하느님의 권한을 주었다.

 추정상의 내 아버지와 같이 나는 그들을 세상에서의 내 보호자로 임명했다. 그러나 많은 사제의 경우에, 성 요셉이 나를 다루시던 사랑과 감실 안에 있는 내게 대한 그들의 데면데면함 사이에는 얼마나한 차이가 있느냐!

 아들아, 나는 내 사제들에게 내 말을 전하라는 의무를 맡겼다. 그러나 사제성직의 이 중요한 의무가 어떻게 수행되느냐? 전도에 따른 성과 없음이 이를 증언한다.

 나는 내 사제들에게 지옥의 어두운 세력과 싸우라는 임무를 맡겼다. 그러나 누가 그렇게 하는데 마음을 쓰느냐? 누가 마귀를 쫓아내는 데 관심을 가지느냐? 그렇게 하려면 성덕을 지향해야 한다. 병자들을 낫게 하는데 기도와 고행이 필요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아들아, 사제들은 거룩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거룩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많은 사제가 그러는 것과 같이 인간적인 방법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인간들을 신뢰해서는 안되고, 내 자비로운 마음과 내 어머니의 티없는 마음을 신뢰해야 한다.

 내 사제들은 내 참된 대리자들이다. 그러나 작은 숫자를 빼놓고는 이 품위를 자각하지 못한다. 그들은 내가 신임장을 주어 사람들과 가족들과 민족들에게 보낸 내 사자들이다.

 

 

사제직은 하나의 봉사이다

 

 사제들은 실제로 내 영원한 사제직의 몫을 받은 사람들이다. 사제는 신비체에서 큰 일과 초자연적인 사건들의 주역이다. 사제들은 그들의 형제들의 구원을 위해 주어지고 봉헌되는 제물이어야 한다. 자기자신의 인간적인 지능과 활동의 수단으로 영혼들을 구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중한 죄이다. 믿음과 사랑과 고통과 기도가 들어있지 않은 외적인 활동은 어느 것이나 무효하고 헛된 것이다.

 사제직은 하나의 봉사이다. 섬기는 사람은 섬김을 받는 사람과 구별된다. 그는 섬김을 받는 사람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사제는 마치 목자가 그의 양떼와 구별되는 것과 같이 그에게 맡겨진 영혼들과 구별되어야 한다. 만일 사제들이 (아씨씨의 프란치스코가 보던 것과 같이) 그들이 지니고 있는 품위의 위대함과 숭고하고 초자연적인 능력을 보면 자신들과 사제들에 대해서 크고 경건한 존경을 가질 것이다.

 불행히도 어떤 사제들은 나를 잊어버리고 자기들만을 생각하고, 다른 많은 사제는 세상은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고 사탄에게서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과 어울린다. 어떤 사제들은 나를 배반하고,다른 많은 사제는 세상은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고 사탄에게서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과 어울린다. 어떤 사제들은 나를 배반하고, 어떤 사제들은 오류와 이단의 씨를 뿌림으로 영혼들 안에서 내 나라를 무너뜨린다. 또 어떤 사제들은 영혼의 생명유지에 필요한 정기, 즉 그 진짜 넋은 고통인 사랑이 없으므로 인해서 메말라있다. 그러므로 너는 내 모든 사제가 회개하도록 속죄하고 고행하고 기도하라는 내 권고에 확실히 대응하면서 기도하고 너를 바쳐야 한다. 그렇다. 그들은 회개하고 각자가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Ad majorem gloriam Dei.) 그리고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제 자리에 있어야 한다.

 

 

실제적인 갱신

 

 "나는 내 사제들이 성체 안에서 나와 함께 기도하고 행하기를 원한다." 고 말씀하신 것은 정확히 말해서 무슨 뜻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나는 십자가의 제사에서 어떻게 했고, 미사 성제에서 어떻게 하느냐? 내가 아버지께 어떻게 기도했느냐? "아버지, 될 수 있으면 이 잔을 제게서 멀리 치워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제들이 잊고 있는 것과 같이) 미사성제는 십자가의 제사의 실제적인 갱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십자가의 제사에는 내 뜻을 없앰과 전적으로 없앰과 합쳐진 아버지께 드린 내 기도가 있다. 무한한 사랑과 무한한 고통의 행위와 더불어 나 자신을 전적으로 바치는 제헌이 있다. 영혼들을 위한 나 자신의 제헌이 있다. 이 제헌에 나와 일치하는 사제, 나와 일치해 있기를 내가 원하는 사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내 사제직에 한몫 낀다. 그는 이것을 행하는 때만큼 사제다운 때가 결코 없다.

 

 

 

초자연적인 것의 허비

 

 이 긴요한 일치, 이 긴밀하고 생산력 많은 일치가 없는 미사성제가 얼마나 많으냐!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사제는 그의 하루의 가장 중요한 행위로 증명한다. 즉 나와 일치해서 책임있는 방식으로 그의 뜻을 아버지께 효과적으로 바치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없애고, 내가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나 자신을 제헌하는 영혼들을 위해 자신을 제헌하기를 받아들일 때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요컨대 사제는 미사성제에서 나와 함께 실제로 자기 자신을 아버지께 바쳐, 아버지에 의해서 영혼들에게 주어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제의 어떤 활동보다도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과 초자연적인 것의 허비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그의 활동 하나하나가 그 근본에서부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된다.

 아들아, 만일 많은 미사가, 정말 아주 많은 미사가 어떻게 거행되는지 내가 보여주면, 너는 너무 놀라서 죽기에 이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사제들이 내가 전에 그랬고 지금도 그런 것처럼 기도하고 행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그들은 그들 자신과 그들의 형제들을 위해 참된 영적 쇄신의 도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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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죄인에 대한 판단과 비난에 길들여지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봅니다.(위의 글은 외국의 서적에서 본 내용인데 오늘 복음과의 연관성도 있고 해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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