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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의 향기 (사순5주간 목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4-10 조회수1,251 추천수13 반대(0) 신고

◎ 2003년4월10일(목) -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8,51-59

 

<유다인들이 예수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몸을 피하셨다.>

 

[복음의 향기]

 

오늘 복음도 어제의 복음에 이어 유다인들의 비난에 대한 예수님의 자기계시, 즉 신성(神性)을 제고(提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 제고(提高)되는 예수님의 신성(神性)은 예수께서 영생(永生)을 주관하는 분이시며, 시간(時間)이 있기 전에 존재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두 가지 신성을 계시함에 있어서 매번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라는 서두를 말씀하시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200주년 신약성서에서는 이를 "진실히 진실히 당신들에게 말합니다" 라고 번역하였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내 말을 잘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51절)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58절) 예수께서는 특별히 자기 자신을 계시하고자 하는 말씀에 이 서두를 붙임으로써 연결되는 말씀의 내용을 한층 강조하고 계신다. 4복음서마다 각기 특성이 있지만,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라는 서두말씀은 공관복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유독 요한복음 저자만이 이를 즐겨 사용하는 바, 그것도 무려 25번이나 사용하고 있다.(1,51; 3,3; 3,5; 3,11; 5,19; 5,24; 5,25; 6,26; 6,32; 6,47; 6,53; 8,34; 8,51; 8,58; 10,1; 10,7; 12,24; 13,16; 13,20; 13,21; 13,38; 14,12; 16,20; 16,23; 21,18)

그렇다면 이렇게 내용을 한층 강조하는 서두말씀을 붙여 계시하는 내용을 살펴보자. 우리는 앞서간 복음들에서 하느님의 자기계시의 한 방법인 "나는 ~이다" 라는 "에고 에이미" 도식을 알아보았다. 부연하자면, 하느님께서 "나는 (무엇)이다" 라고 말씀하실 때, 어떤 "무엇"이 술어(述語)로서 주어(主語)인 하느님을 설명하거나 진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바로 그 "무엇" 자체라는 말이다. 이 경우 어떠한 보어(補語)도 필요치 않는다. 사람인 내가 "나는 (무엇)이다" 라고 한다면, 나는 원래 그 "무엇" 자체가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라는 술어(述語)는 주어(主語)인 나를 설명하거나 그 의미를 밝혀줄 뿐이라는 말이다. "김영삼은 김현철의 아버지다" 라고 말할 때, 김영삼은 원래부터 아버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버지이기 위해서는 보어(補語)로 사용된 김현철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김영삼은 아버지다" 라고 말한다면 틀릴 수도 있다. 왜냐하면 김영삼은 김현철과의 관계 속에서만 아버지로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바로 말씀이요, 진리요, 생명 그 자체임을 알았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그 말씀 안에 머무르는 것이며, 나아가 생명이신 예수님 안에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된다. 여기서 영원한 삶이란 지상에서 마냥 이어지는 "지긋지긋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아니라 죽은 후에 맞이하는 새로운 삶이다. <시간 있으시면 1999년에 제작된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을 한 번 감상해 보세요!>  유다인들은 많은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하느님의 예언자들도 다 죽었다고 하였지만, 그들이 하느님 곁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루가 16,19-31/부자와 라자로 비유; 마태 17,1-8/예수의 거룩한 변모 참조.)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보다 훨씬 전인, 천지창조 이전부터 계시는 분이시다. 이러한 언명이 "전(前) 실존적(實存的) 그리스도론"을 가능하게 한다. 아브라함은 태어났지만(기노마이; ginomai), 예수님은 처음부터 계시는 분이시다(에이나이; einai). 사실 시간(時間)이 하느님을 구속하거나 제한할 수 없다. 하느님께는 시간(時間)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있다면 하느님은 이를 초월하여 계신다. 하느님을 굳이 인간이 말하는 시간 영역, 즉 과거(過去), 현재(現在), 미래(未來)의 영역에로 끌어온다면, 하느님은 현재에만 계신다. 시작이 없으시니 과거가 없고, 끝이 없으시니 미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느님은 현재, 그것도 순수현재(pura praesentia) 이시다. 이러한 진리에로 초대받은 유다인들은 안타깝게도 마음과 귀를 모두 닫아걸고 손에 돌을 쥔다.◆

[하느님은 산 자의 하느님이십니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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