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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의 향기 (주님수난성지주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4-13 조회수1,698 추천수6 반대(0) 신고

◎ 2003년4월13일(일) - 주님수난성지주일

 

[오늘의 복음]  마르 11,1-10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수난복음] 마르 14,1-15,47              

 

[복음의 향기]

 

우리는 오늘 주님수난성지주일을 시작으로 교회의 1년 전례력 가운데 가장 거룩한 한 주간, 즉 성주간(聖週間)을 맞이한다. 교회는 성주간 동안 예수께서 비천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을 시작으로 죽음예고(월요일), 제자들의 배반예고(화요일), 유다의 배반(수요일), 최후의 만찬(성목요일), 수난과 죽음(성금요일), 무덤에 묻히심(성토요일)과 부활(부활성야)을 통하여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가져온 인류구원사건을 경축한다.

오늘 전례에서는 두 개의 복음이 봉독된다. 제1부 행렬을 위한 복음(마르 11,1-10)으로 예수님의 당시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고, 제2부 미사에서는 수난복음(마르 14,1-15,47)을 장엄하게 봉독함으로써 성주간 중 그 절정을 이루는 성삼일(聖三日)의 만찬, 수난, 죽음의 사건을 미리 앞당겨 기념한다.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은 제자 둘을 시켜 새끼 나귀 한 마리를 구해 오도록 하신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시기도 하다. 이미 예언자 즈가리야가 외쳤듯이 예수께서는 세상의 왕들이 타는 군마(軍馬)가 아닌 겸손을 상징하는 나귀를 타시는 것이다: "수도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수도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아라. 네 임금이 찾아오신다. 정의를 세워 너를 찾아오신다. 그는 겸비하여 나귀, 어린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시어 에브라임의 병거를 없애고 예루살렘의 군마를 없애시리라."(즈가 9,9-10)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예수님을 향하여 군중들이 만세를 외치며 환호하고 그 가시는 길에 겉옷과 나뭇가지를 깔고서 열광하는 모습은 솔로몬의 즉위식(1열왕 1,38-40)과 예후의 즉위식(2열왕 9,12-13)을 연상시킨다. 군중들의 이러한 태도는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께서 솔로몬이나 예후와 똑같은 왕으로 군림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곧바로 무너진다. 예수님은 말 그대로 평화와 겸손의 왕이요, 야훼의 고통받는 종이시기 때문이다.(이사 50,4-7/제1독서)

 

[강론] 구경꾼인가? 동반자인가?

 

우리는 5주일 전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희생과 극기를 통한 사랑의 실천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향한 우리들의 마음을 준비하여 왔다. 오늘 우리는 세상의 온 교회와 더불어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며, 주님의 수난 복음을 봉독함으로써 예수님의 수난 받으심과 죽으심을 묵상한다. 아울러 오늘부터 사순절의 그 마지막 절정인 성주간을 시작한다.

우리는 오늘의 전례가 관중들의 믿음과 불신, 환호와 배신, 기쁨과 슬픔 등의 두 가지 서로 다른 감정의 측면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오늘 전례는 사뭇 의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환호하고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군중들과 천진난만하게 기뻐하는 어린아이들 에 둘러 싸여 성대하고 웅장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우리들도 오늘 이 미사를 시작하면서 행렬을 통하여 그 기쁨에 동참한다. 그러나 곧바로 미사 중에 듣게 되는 수난 복음을 통하여 기쁨과 환호의 장면들이 일 순간에 사라지고 모든 것이 아픔과 죽음으로 향하는 비탄에 젖은 분위기를 느껴야 한다. 이런 까닭에 오늘 주일을 "성지주일"(환호와 열광), 또는 "수난주일"(아픔과 죽음)이라 하며, 이 둘을 합쳐서 "주님수난성지주일"이라 부르는 것이다. 사실상 예수께서는 당신의 공생활 중에 한번도 스스로 영광을 받으려 하시지 않았다. 병자들과 악령 들린 사람들을 치유하는 기적을 행하신 후에도 당신의 이름을 알리지 말기를 단단히 당부하셨으며,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오 천명 이상의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을 베푸신 후에 군중들의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 했지만 그분은 거절하시고 오히려 그 자리를 피하셨다.

그러나 오늘은 예수께서 지금껏 받지 못하셨던 영광을 허락하시고 환호와 열광을 한 몸에 받으신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하고 군중들이 외친다. 이는 곧 예수께서 당신이 왕이며 메시아임을 부르짖는 군중의 고백을 받아들이시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제 머지않아 몸소 수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또 부활하심으로써 친히 영원한 왕이시며, 메시아로서 드러나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왕이며 메시아라 부르고 환호하던 군중들은 백성의 대사제들과 원로들, 그리고 율법학자들의 선동에 빠져들어 마음이 변한다. 그들은 돌변하여 살인자 바라빠를 놓아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부추긴다. 예수님의 주변에는 차츰 빈자리가 생기기 시작하나. 군중들과 당신의 친 제자 유다스만이 당신을 배반하여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겁에 질려 예수를 버리고, 베드로까지도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였다. 결국 사형선고를 받으신 예수님! 머리 위에는 왕관이 아닌 가시관이 씌워지고 채찍질에 온몸이 헤어져 피범벅이 된 예수! 이제 그분은 몸소 매어 달리실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로 향하신다. 언젠가 그분은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매일 나를 따라야 한다" 라고...

한때는 환호하고 열광하던 군중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옆에 따라 가면서 침을 뱉고 조롱하는 구경꾼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구경꾼인가? 동반자인가? 아니면 방관자인가?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행렬에 임하고 있는가? 또 어떤 마음으로 수난복음을 들었는가?

우리가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며 "호산나"를 외치는 것은 그분이 진정 메시아요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가 처절한 고통의 수난복음을 듣는 것은 우리도 그분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그 위에서 목숨을 내어놓기 위해서이다. 이제 그분의 길은 우리의 길이 되었고 그분의 십자가는 우리의 십자가가 되었다.◆

[사랑하올 주 예수님,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당신을 낮추셨으니, 거만한 저희를 용서하소서.

그러나 하느님께서 모든 것 위에 당신을 높이셨으니, 나약한 저희를 받아주소서.

이제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고백하나이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시여...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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