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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의 향기 (부활2주간 수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4-30 조회수1,299 추천수4 반대(0) 신고

◎ 2003년 4월 30일 (수) -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3,16-21

<하느님이 아들을 보내신 것은 아들을 시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복음의 향기]

 

니고데모의 호감에서 출발한 예수님과의 대화는 어느새 세상을 향한 예수님의 자기계시적(自己啓示的) 가르침으로 반전되었다. "세상의 일"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니고데모가 "하늘의 일"을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 담겨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니고데모와 행한 대화의 연속으로 보기는 어렵다. 즉, 예수의 역사적 발설(發說)이라는 보다는 요한복음사가의 독자적 성찰의 결과로 후에 편집된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16절) 이 말씀은 모든 복음서와 성서 말씀의 요약이며, 결론이다. 요한은 자신의 서간에서 이 점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1요한 4,9-16) 세상의 구원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게 되는 동기(動機)는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구원의 방법(方法)으로 하느님은 "외아들을 보내주시고", 외아들을 세상에 보낸 목적(目的)은 곧,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자기 외아들까지 보내어 세상을 구원하려는 동기(動機: motivation)이다. 그 동기가 바로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심이다.

 

하느님께서 그토록 극진히 사랑하시는 세상(世上)이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곳이다. 온갖 악(惡)과 불의(不義), 고통과 죽음이 한데 뒤섞여 질서 없이 춤을 추는 곳이 아닌가? 사실 세상은 비구원적 상태 그 자체이다. 비구원적 세상에 대한 인간의 경험은 구원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렇다고 해서 구원이 자연발생적으로 주어지거나 툭하면 죄에 빠져 허덕이는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들(특히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 등의 동양종교)이 그러한 착각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고도(高度)로 수련한 삶을 통하여 적어도 구원을 성취할 수 있다는 아집에 빠져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구원할 수는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너나 나만의 구원이 아니라, 전적으로(total) 비구원적 상태에 빠져있는 세상의 구원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세상을 하느님은 사랑하신다. 그렇다고 세상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세상이 벌어들인 것은 사실상 하느님의 분노(忿怒)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세상을 사랑하신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고(1요한 4,8), 그 사랑이 세상을 창조하였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영(靈)이 바로 사랑이다. 이 사랑만이 자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느님께서 극진히 사랑하시는 자기에게 파견된 외아들을 믿는 일 뿐이다. 믿지 않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 받는다. 이 판결은 하느님이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 불신(不信) 그 자체가 불신자(不信者)에게 내리는 판결이다.◆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이 있는 데로 나아갑니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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