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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의 향기 (부활3주간 화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5-06 조회수1,819 추천수11 반대(0) 신고

◎ 2003년 5월 1일 (목) - 부활 제2주간 목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6,30-35

<하늘에서 너희에게 진정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이시다.>

 

[복음의 향기]

 

어제 복음(요한 6,22-29)에서 예수께서는 군중들에게 육신만을 배불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찾기"보다는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즉 "추구"하라고 강조하셨다. 이 말씀은 "불멸의 양식이 어떤 것"인지 묻고, 그것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추구"하라는 것이다. 불멸의 양식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조건은 "불멸의 양식을 주시고자 하는 자"를 믿어야 하는 것이 어제 복음의 결론이었다. 오늘의 복음(6,30-35)은 쉽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① 예수께서 "불멸의 양식을 추구하는 조건"으로 "불멸의 양식을 주는 자"를 믿어야 한다고 하자 사람들은 믿음을 얻기 위한 기적을 요구한다.(30-31절) 그들은 모세와 예수를 대립시켜 "모세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다 우리의 조상들을 먹이는"(출애 16,1-36; 시편 78,24; 지혜 16,20-29 참조) 기적을 보여주었는데, 예수는 어떤 기적을 보여 믿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믿음을 위해 기적(奇蹟)을 청하고 있다. 사실 믿음이란 내심(內心)에 주어진 어떤 무엇에 대한 자유로운 응답(response)이다. 기적을 보고 믿는다면 그것은 기적이 믿음을 강요하는 셈이 되고 만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라. 그들은 항상 기적을 요구했고, 기적을 보고서야 믿었다. 기적에 믿음을 강요당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따라서 믿음은 자유의지의 결단이다.

 

②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다 조상들을 먹인 사람은 모세가 아니라 "예수의 아버지"라고 정정(訂正)하여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 주신다.(32-33절) 예수의 아버지는 다름 아닌 하느님이시다. 이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모세가 하늘에 청한 만나와 하느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빵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들이 광야생활을 하는 중에 일용할 양식이 넉넉지 못함을 불평하자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만나와 메추라기를 양식으로 주신다.(출애 16,1-36) 이 기록을 살펴보면 만나는 그야말로 하루의 양식이었고(안식일은 예외) 다음 날은 곰팡이와 구더기의 밥이었다. 그러나 오늘 하느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빵은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다.

 

③ 사람들이 예수께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늘의 빵"을 청하게 되자, 예수님 스스로가 "생명의 빵"이심을 선포하신다.(34-35절) 사람들은 앞서간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조상에게 빵을 먹인 사람이 모세가 아니라 "하느님 내 아버지"라는 예수의 자기계시적 언명(言明)도 쉽게 수긍하는 듯하다. 가파르나움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사람들 보다 순진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안중에 "하늘의 빵" 밖에 없는 것인가? 예수님 스스로가 "생명의 빵"이라는 선포는 자신에 대한 결정적인 계시이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35절) 예수님 스스로가 생명의 허기짐과 타는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예수님이 생명의 빵이시기 때문이다. 이 빵을 얻기 위해서는 그분에게 가야하며, 그분에게 가는 것은 그분을 믿는 것이다.◆

 

[구약의 만나는 하루의 양식이었지만,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은 영원한 양식입니다. 만나는 사물(事物)이지만 생명의 빵은 인격(人格)으로서 바로 예수님 그분이십니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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