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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엑끌레시아의 사명
작성자은표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3-05-11 조회수1,277 추천수2 반대(0) 신고

 

                     

          ☞   엑끌레시아의 사명  ☜

 

神의 역사{歷史}는 엑끌레시아 단위로 진전해 간다. 구체적으로는 그것이 개개의  집회를 통해서 진전해 가는 것이다. 복음의 역사{歷史}는 개인을 통해서가 아니고 집회를 통해서 구체적인형{形}을 취하면서 진전해 가는 것이다. 神의 역사는 엑끌레시아가 십자가를 짊어

짐으로써 진전한다.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음으로써 神의 역사{歷史}의 혈로{血路}가 결정적으로 타개{打開}=【{’두드려 열어 놓는다’}는 뜻으로 얽하거나 막힌 일 따위를 헤치거나 뚫어 해결함】된 것처럼, 엑끌레시아가 상처입고 넘어질 때, 神의 나라는 전진하는 것이다. 엑끌레시아는 먼저 내부에 대해서 상처받고, 고통받으면

서 향진한다. 집회{集會} 內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상호의 불신과 죄를 그리스도 안에서 지

고있는 것이다. 자타의 죄와 불신 때문에 각자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있는 것이다. 이때 각

자의 직접적인 사랑이 생겨, 무슨 결실을 맻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이 새

롭게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랑은 타{他}의 불신과 죄를 짊어지고, 神앞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타{他}를 위한 중

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신앙생활이 개인 단위로 영위되어질 때, 죄의 문제는 비교적 간단

하다. 각자가『교제』속에 있게 될 때, 상호 타{他}를 사랑할 수 없는 자타의 죄가 구체적

으로 박두{迫頭}해 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죄를 그리스도 안에서 사해 주지 않고 상호 他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지 않는다면, 복읍의 진리는 전적으로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

다. 엑끌레시아의고통은 죄,『교제』속에 들어갈 수 없는 형제, 구체적으로 말해서 집회를 떠나고 신앙을 버리는 형제에 대한 그리스도의『중재』안에서 그 정점을 이루고 있다. 피를 흘리면서까지 죄인을찾아준 그리스도와 일체{一體}가 되고, 깊이 탄식하면서 중재하는 성령

을 체험할 때만이, 이같은 엑끌레시아의『중재』기도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

에 의한『중재』이기에, 집회의 출입에 대한 각자의 자유를 전제로 할 때만이, 그것이 참으

로 복음적으로 성취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집회의 질서는 참다운 의미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적 관계로서의 의리, 인정으로 이루어진『모임』이라고 한다면, 거기

에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간적인 사랑과의 혼동이 생길 것이다. 엑끌레시아는 한편 외부에 대해서 무거운『짐』을 지고 있다. 먼저 세속적인 세계와 그의 歷史의 진전에 대해서 엑끌

레시아는 짐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구체적으로 他의 집회와의 절충대결 {折衝

對決}에 대해서 엑끌레시아는『짐』을 지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도 각 집회는 他에 대해서 완전히 문호가 개방되지 않으면 안 된다. 개성적인 것이야말로 참으로 歷史를 짊어

지고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상호 개성과 주장과 신앙을 달리하는 집회 내지 교회가 상호 他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他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협력하

고 대립할 것이다. 이러한 결충대결{折衝對決}에서 그리스도의 깊은 상처를 부담하고, 십자

가 밑에서 찢어지는 집회야말로 神의 歷史의 진전에 가장 깊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

 

PS: 김정원 신부님 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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