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복음산책 (연중14주간 수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7-09 조회수1,772 추천수10 반대(0) 신고

◎ 2003년 7월 9일 (수) -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 성 아우구스티노 자오롱 사제와 동료 순교자 기념

오늘은 성 아우구스티노 자오롱(Zhao Rong, +1815) 사제와 1648년~1930년 사이에 순교한 동료 119명의 중국(中國)성인들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들 120명의 성인들은 2000년 10월 1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諡聖)되었다.

 

[오늘의 복음]  마태 10,1-7

<너희는 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라.>

 

그 때에 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악령들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비롯하여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였던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데오, 4) 가나안 사람 시몬, 그리고 예수를 팔아 넘긴 가리옷 사람 유다이다.

5) 예수께서 이 열두 사람을 파견하시면서 이렇게 분부하셨다. "이방인들이 사는 곳으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도시에도 들어가지 마라. 6) 다만 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여라."◆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제자는 많으나 사도는 적다.

 

오늘 복음은 12사도의 선발과 파견설교를 주제로 한 내용이다. 갈릴래아를 무대로 본격적인 전도활동을 시작하시던 예수께서는 곧바로 사람들을 당신 곁으로 부르셨다. 그것은 예수님의 인류구원사업이 예수님 단독으로 이루어지는 사업이 아니라 인간의 협조가 있어야 함을 암시하는 것이다. 물론 구원의 주체는 하느님이신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구원의 대상이 인류, 즉 사람이라는 점이 그리스도 강생(降生)의 핵심이다. 인간의 구원협조는 하느님의 소명(召命)아래 천지창조 때부터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수행되어왔다. 하느님 소명의 절정(絶頂)은 두말할 것 없이 성모 마리아의 소명이다.

 

성모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신 교회(敎會)의 소명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배를 손질하던 어부출신 시몬 베드로와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이 네 사람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신 것"(마태 4,18-22)으로 시작되었다.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마태 4,17)는 예수님의 복음과 수많은 병자치유의 기적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본 사람들이 갈릴래아와 데카폴리스와 예루살렘과 유다와 요르단강 건너편에서 몰려와 무리를 지어 예수님을 따르게 된다(마태 4,25). 이로써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은 예수께서 그 많은 무리의 제자들 중에서 정예부대를 선발하셨다. 제자(弟子)들은 많았지만 사도(使徒)로 뽑힌 사람은 열 둘이었다. 열 둘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의미한다. 그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왜 많은 제자들 중에 오늘 복음에 거명(擧名)된 사람들만 사도로 선발되었는가? 그 이유는 예수님의 마음에 물을 것이지만 마태오복음사가의 의도 또한 수긍해 볼만하다. 사도선발의 기준은 어떤 특별한 조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서간 복음에 들어 있다. 그것은 바로 산상설교(5-7장)와 기적사화 집성문(8-9장)에 있다는 말이다. 즉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또 이들을 통하여 예수님께 놀라움 이상의 믿음을 마음에 간직한 사람, 적어도 이 믿음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 자신을 돌보기보다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가르침과 행적을 지속적으로 돌보고 전파할 수 있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사도(使徒)로 선발되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는 배반자도 포함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가리옷 사람 유다가 당신을 배반할 것을 뻔히 알고 계시면서도 왜 사도로 선발하셨을까? 이렇게 따지자면 베드로도 멀리 못 간다. 베드로도 유다에 못지 않게 스승을 배반하였다.(26,69-75) 그러나 유다는 뉘우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렀지만(27,3-5), 베드로는 회개의 눈물을 흘린 후 다른 방법으로 대가 이상의 가치를 지닌 순교(殉敎)로 스승을 따라갔다. 결국 선발은 예수께서 하시지만 사도로의 실존(實存)은 스스로의 태도에 의해 좌우되며, 사도로서의 진가(眞價)는 삶의 마지막인 죽음이 밝혀 줄 것임을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이다.

 

사도로서의 진정한 태도는 세상의 악한 세력에 항거하여 이를 물리치고, 병자와 노약자,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 등 세상의 소외된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베풀며, 길 잃은 양을 찾아 세상 끝까지라도 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소홀히 하는 사도는 그에게서 이름만 남을 뿐 아무 의미도 없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