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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동정 마리아 모후)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8-22 조회수1,670 추천수7 반대(0) 신고

◎ 2003년 8월 22일 (금) -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오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은 성모 마리아를 여왕으로 기념하는 날로서 교황 비오 12세(1939-1958)가 1954년 성모성년의 폐막식을 기념하여 선포한 축일이다. 1954년은 교황 비오 9세(1846-1878)가 1854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선포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오늘 기념일은 원래 성모성월의 마지막 날인 5월 31일에 지냈으나 1970년 새로운 로마교회 전례력에 8월 22일로 옮겨졌다. 이는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의 8부 축제를 마감하는 날이다.       

 

[오늘의 복음]  마태 22,34-40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그 때에 34) 예수께서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몰려왔다. 35) 그들 중 한 율법교사가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36) "선생님,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37)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 39)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40)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사랑의 이중계명은 순서가 아니라 동시에 일어난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와 부활에 관해 논쟁을 벌이다가 낭패를 본 모양이다.(마태 22,23-33)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모세오경만 경전으로 여겼기 때문에 모세오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부활신앙을 배척한 사람들이다. 부활신앙인 경전에 등장하는 시기는 기원전 6세기경에서 2세기경 사이로서 이 시기에 기록된 예언서(이사야, 에제키엘, 다니엘)와 묵시문학(마카베오) 등에 부활신앙이 나타난다. 그들이 죽은 형의 가문을 이어주는 모세의 율법, 수혼법(嫂婚法; 창세38,8; 신명 25,5-10)을 근거로 예수께 괴변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다"는 말로 그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신 것이다. 소문이 퍼지자 "세금에 관한 논쟁"(마태 22,15-22)에서 예수의 대답에 탄복을 하고 물러갔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다시 몰려왔다.

 

  바리사이파 사람들 중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를 시험하려고 질문을 던진다. 이 시험은 어떻게 하든 예수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것이다. 사실 율법교사들은 모세의 율법 중 248개의 행령과 365개의 금령 모두를 똑같은 비중으로 여겼다. 이 중에서 가장 큰 계명 하나를 집어내라니(35절), 우리가 보기에도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 하나를 제시하시고, 이 계명에 버금가는 제2의 계명도 잇달아 제시하신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의 이중계명으로 알고 있는 "하느님 사랑"(신명 6,5)과 "이웃사랑"(레위 19,18)이다. 예수께서는 이 두 계명을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로 천명하신다.

 

  613개의 계명들은 분명히 서로 다른 계명들이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은 모든 계명이 똑같은 비중을 지닌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어떤 기준으로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 하나와 이에 버금가는 둘째 계명을 제시하시는 것일까? 기준은 간단하다. 무엇 때문에 계명이 존재하는 가를 따져보면 된다. 계명의 존재이유는 하느님과 인간(이웃)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큰 계명인 동시에 모든 계명의 기본적인 정신, 즉 골자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인 셈이다. 사랑 없이는 어느 계명도 완벽하게 준수될 수 없고, 빈 껍데기로 있을 뿐이다. 사랑이 하나의 계명을 성취시켜 충만하게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도 구약의 율법(613개)을 지키도록 요구받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율법의 정신인 사랑을 실천한다면 율법을 능가하는 행위를 수행한 셈이 된다. 그런데 우리들 사이에는 하느님은 사랑한다면서 인간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이 바로 나라면 왜 예수께서 수많은 율법들 가운데 하나인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을 한데 묶어 가르치시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은 순서(first and second)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동시(synchronize)에 일어나는 일이다.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중에 이웃사랑에 대한 의지가 굳건해지며, 내가 이웃을 사랑하는 가운데 하느님께 대한 순명이 확증된다."(루돌프 불트만)◆[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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