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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고르넬 + 치프리)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9-16 조회수1,686 추천수11 반대(0) 신고

◎ 2003년 9월 16일 (화) -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제20대 로마교황 파비아노(236-250)가 순교의 월계관을 쓴 후, 정확히 14개월이 지난 251년 고르넬리오 신부가 교황의 계승권을 잇게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부터 이 시기에 이르기까지 교회 안팎으로 박해가 끊이지 않았다. 동시에 교회 안에 불거진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한 번 배교한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뉘우치고 재차 입교를 원하는 경우, 이들을 수용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 문제는 교회의 분열을 조장하기에 충분한 사안이었다. 교회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 즉 가능한 수용과 엄격한 거부로 갈라졌다. 물론 이 문제는 그리스도교가 313년 신앙의 자유를 얻고 로마제국의 국교로 인정된 이후까지 지속될 것이었다.

 

  고르넬리오 교황 스스로가 당시 카르타고의 주교였던 치프리아노와 함께 가능한 수용의 입장을 고수하였다. 교황은 배교자들뿐 아니라 대죄를 지은 사람들도 고백성사의 은총을 받아 교회와 화해할 수 있다는 회유책을 내놓았다. 이에 맞서 엄격한 거부의 입장을 편 쪽은 후일 로마의 주교가 된 노바시아노 신부와 그의 추종자들이었다. 그들은 교회가 배교의 죄와 그 밖의 대죄를 용서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결국 교황의 태도가 교회의 공식 입장으로 선포되긴 하지만, 고리넬리오 교황은 갈로 황제에 의해 유배형에 처해졌고, 253년 9월 14일 치비타베키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동료였던 치프리아노 주교는 수많은 박해를 견디어 내면서 자비와 확신으로 교구를 다스렸으며, 많은 신자들이 그의 성덕을 칭찬하였다. 치프리아노 주교는 258년 9월 14일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시기에 순교하였다. 그는 성서와 초기 교부들의 신학사상을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겼다.

 

[오늘의 복음]  루가 7,11-17

<젊은이여, 일어나라.>

 

  그때에 11) 예수께서 나인이라는 동네로 가시는데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도 함께 따라갔다. 12) 예수께서 성문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마침 죽은 사람을 메고 나오는 장례 행렬과 마주치시게 되었다. 죽은 사람은 어떤 과부의 외아들이었고 동네 사람들이 큰 떼를 지어 과부와 함께 상여를 따라오고 있었다.

13) 주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울지 마라" 하고 위로하시며 14) 앞으로 다가서서 상여에 손을 재시자 메고 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때 예수께서 "젊은이여, 일어나라"하고 명령하셨다. 15)그랬더니 죽었던 젊은이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16)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 위대한 예언자가 나타나셨다"고 말하기도 하였고 또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을 찾아와 주셨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17) 예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근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

 

  루가복음은 예수님의 평지설교(6,20-7,1)를 보도한 후, 곧바로 두 편의 기적사화를 들려준다. 두 편의 기적사화는 가파르나움에서 중병으로 거의 죽게된 백인대장의 종을 원격(遠隔) 치유하신 기적(7,1-10)과 나인에서 과부의 아들을 소생시킨 기적(7,11-17)이다. 오늘 복음은 과부의 아들을 소생시킨 기적에 관한 내용이다. 그런데 전후좌우의 문맥을 살펴보면 왜 두 편의 기적사화가 여기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루가복음사가는 이 시점에서 예수님의 신원(身元)과 정체성에 대한 중간결산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중간결산의 역할은 세례자 요한에게 주어졌다. 두 편의 기적사화 다음 대목을 보면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또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7,19) 라는 질문을 던지고는 그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이 보낸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먼저 살펴보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소경이 보게 되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7,22-23) 하고 말씀하셨다. 의아하면서도 재미있는 곳은 바로 직전의 구절이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신원(身元)에 관한 질문을 던지자마자 루가는 "바로 그 때 예수께서는 온갖 질병과 고통과 마귀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소경들의 눈도 뜨게 해 주셨다"(21절) 라는 재빠른 보도를 삽입하였다. 이 보도와 예수님의 답변을 비교해 보면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이 빠져있다. 따라서 루가에게는 죽은 사람을 소생시키는 기적을 앞서 보도해야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나인에서 과부의 아들을 소생시킨 기적은 루가복음의 고유사료이다. 전체 구조의 흐름은 엘리야 예언자가 사렙다 지방 과부의 죽은 아들을 되살린 기적(1열왕 17,8-24)이나 엘리사 예언자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되살린 기적(2열왕 4,20-37)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복음이 선포하는 진의(眞意)는 판이(判異)하다. 엘리야나 엘리사는 죽은 아이를 살리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 쓴다. 엘리야가 과부의 죽은 아들 위에 엎드려 몸과 몸을 맞대고 야훼께 수 차례 기도를 올리는가 하면, 엘리사는 죽은 아이의 방에서 이리 저리 걷다가 아이 위에 엎드리기를 일곱 번 거듭하여 사자(死者)를 소생시키는데 비하여, 예수께서는 상여(喪輿)에 손을 대고 "젊은이여, 일어나라"(14절) 라는 단 한마디의 명령으로 생명을 도로 주신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사람들의 반응은 실로 놀라울 수밖에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는 일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드디어 예수님을 "위대한 예언자"로 "자기 백성을 찾아와 주신 하느님"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셈이다.(16절) 여기서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싹트게 되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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