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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연중25주간 금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9-26 조회수2,005 추천수15 반대(0) 신고

◎ 2003년 9월 26일 (금) -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노 순교자 기념

  

  오늘 축일의 주인공인 고스마와 다미아노 순교자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구전(口傳)에 의하면 두 사람은 쌍둥이로서 아라비아에서 태어나 시리아에서 의술을 공부하면서 그리스도교에 입문하였다고 한다. 의사가 된 쌍둥이 형제는 치부(致富)가 아닌 신앙전파를 위해서만 의술을 사용하기로 약조하고 킬리기아의 아이가이에서 불쌍하고 가난한 병자들을 돌보며 신앙을 전파하였다. 그들 둘에게 붙여진 별명이 있었으니, 그것은 "아나르귀로이", 풀이하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자"였다. 쌍둥이 형제의 신앙적 모범에 감동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디오클레씨아노 황제(284-305)의 박해령이 떨어지자 킬리기아에서 길 가던 개도 알아보던 쌍둥이 형제가 표적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즉각 체포된 고스마와 다미아노는 303년 참수되어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두 성인에 대한 공경은 삽시간에 동·서방교회로 퍼져나갔고, 의사와 약사의 주보성인이 되었다.

 

[오늘의 복음]  루가 9,18-22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18) 어느 날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시다가 곁에 있던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19) 그들이 "대개는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마는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옛 예언자 중의 하나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0)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다시 물으시자 베드로가 나서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예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22) 예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베드로의 고백과 예수님의 보충계시   

 

  예수는 과연 누구인가? 오늘 복음은 예수의 신원에 대한 여론과 베드로의 고백을 한데 묶어 스승과 제자들간의 대담을 전하면서, 함구령과 함께 첫 번째 수난예고를 들려준다. 어제 복음에서 보았듯이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도 예수의 신원에 대한 의문으로 고민을 했다. 헤로데는 예수가 소생한 엘리야도 아니오, 옛 예언자 중의 한 사람도 아니오, 소생한 세례자 요한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가 목베어 죽였기 때문이었다.

 

  헤로데 안티파스가 예수의 신원에 대한 문제로 고민하면서 예수를 한 번 만나 볼 궁리를 하고 있을 즈음, 예수께서는 직접 당신 제자들에게 이 문제를 던지신다. 제자들에게 던져진 문제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는 것과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예수님 자신의 신원에 대한 질문은 마태오복음(16,13-20)과 마르코(8,27-30)복음에도 똑같이 전해지고 있지만, 여기서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마을들을 향하는 길목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반면, 루가복음은 예수께서 이 질문을 던지시기 전에 "혼자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의 기도수행은 루가가 즐겨 사용하는 고유특성이기도 하지만, 오늘은 "기도"와 "예수의 신원"을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루가복음에서 "예수께 대한 헤로데의 호기심"(9,7-9)과 "예수의 신원에 대한 베드로의 고백"(9,18-21) 사이에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사화"(9,10-17)가 삽입되어 있음을 주목하여야 한다. 헤로데가 예수의 신원을 두고 불안에 쌓인 이유는 아직 만나본적이 없는 예수를 여론에 의존하여 "정치적인 메시아"로 여겼기 때문이다. 루가가 곧바로 들려주는 "빵의 기적"이 헤로데의 생각을 입증해주려는 듯이 보이기도 하겠지만 솔직한 삽입의도는 기적의 방법에 있다. 예수께서 굶주림에 지친 오천 명 이상의 군중을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배불리신 기적(奇蹟)은 헤로데가 생각하는 "정치적인 권모술수(權謀術數)"로 이루어낸 치적(治績)이 아니라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께 올려바친 "감사의 기도"로 이루어낸 기적(祈績)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께서는 12사도를 선발하실 때(루가 6,12)와 같이 기도하신 후 제자들에게 당신의 신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복음의 질문은 예수께서 제자들로부터 어떤 대답을 듣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제자들의 입을 빌어 스스로를 계시(啓示)하시기 위한 것으로 알아들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대하던 권세 당당한 정치적 메시아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수난과 부활의 메시아로 오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만은 하늘나라의 신비를 알 수 있는 은총이 주어졌기에 그들의 입을 빌어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이다. 베드로가 오늘 제자단을 대표하여, 나아가 전체교회를 대표하여 비록 자신의 입으로 스승 예수를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시다"(20절)고 고백하지만, 논리적 고백에 따른 실제적 행위에 도달하기는 베드로도, 우리도 아직 멀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고백을 자신의 수난예고로 수정해주시고 보충해주시는 것이다. 이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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