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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연중 제27주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10-05 조회수1,310 추천수7 반대(0) 신고

◎ 2003년 10월 5일 (일) - 연중 제27주일

▣ 군인주일

 

[오늘의 복음]  마르 10,2-12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2) 그때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께서는 "모세는 어떻게 하라고 일렀느냐?" 하고 반문하셨다.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은 허락했습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4)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져서 이 법을 제정해 준 것이다. 6) 그런데 천지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7) 그러므로 사람은 그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8)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하니라 한 몸이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10) 집에 돌아와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물으니 11)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그 여자와 간음하는 것이며 12) 또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사랑과 존경과 신의

 

  마르코복음은 크게 예수님의 갈릴래아 활동기(1-9장), 예루살렘 상경기(10장), 그리고 예루살렘 활동기(11-16장)로 구분된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상경기에 해당한다. 예수께서는 이미 갈릴래아 지방의 선교활동을 통해서 많은 제자들과 추종자들을 얻었다. 또한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군중을 몰고 다니셨다. 그렇다고 군중이 다 예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 중에는 반대하는 자들도 있었다. 예수를 배척하는 자들의 대부분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로서 이스라엘 안에서 이미 기득권을 누리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과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노골적으로 예수께 시비와 논쟁을 걸기 시작했다. 이는 예수를 흠잡아 자신의 세력을 굳히기 위함이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를 군중으로부터 따돌리기 위함이었다. 예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진보의 세력이며 그 반대자들은 보수의 세력들이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이미 시작되었다. 오늘 복음도 이런 갈등의 맥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보수의 세력들은 자신들의 행동기준을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 그리고 조상들의 전통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한편, 진보세력의 주도자인 예수님은 율법과 예언서를 무시하지 않으면서 율법과 예언을 백성들에게 주신 하느님의 정신, 즉 사랑과 자비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단적인 예로 보수파들에게는 율법과 전통에 따라 혼인법도 있고 이혼법도 있었지만, 예수님에게는 법도 이혼도 없고 오직 혼인만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에게는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오직 혼인의 본질과 목적만 있을 뿐이다. 혼인의 본질은 단일성(單一性)과 불가해소성(不可解消性)이며, 혼인의 목적은 부부사랑과 자녀출산이다. 여기서 혼인본질의 단일성이란 한 남자(여자)는 한 여자(남자)만을 배우자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불가해소성은 부부의 결합이 하느님께서 맺어주시는 것이므로 죽음이 이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세상의 어떤 힘도 이를 갈라놓지 못한다는 것이다. 혼인의 본질과 목적이 이토록 숭고하다 할지라도 혼인은 하느님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인 만큼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혼인의 숭고한 본질과 목적은 인간의 자유로운 합의(合意)와 굳건한 신의(信義)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다.

 

  남녀가 혼인을 할 때는 누구나 혼인의 참된 정신에 자유로이 동의하고 이를 따를 것을 서약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검은 머리카락이 파뿌리처럼 희게 될 때가지 일생 한 배우자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킬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살다보면 문제가 생긴다. 서로 몰랐던 쌍방의 결점이 드러나고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이 들이닥치면서 사랑과 신의로 맺어진 서약의 끈이 점점 약해지기 시작한다. 이럴 때 통상 부부들은 있을 수도 없는 "이혼"을 생각한다. 생각이 굳혀지면 있을 수도 없는 "이혼법"에 문제의 해결을 맡겨버린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에는 하루에도 대략 900쌍이 서로 갈라선다고 한다. 이혼은 자녀, 위자료, 유산 등의 문제와 함께 분명 많은 아픔과 상처를 남기면서 점점 사회악이 되어가고 있다. 혼인과 이혼과 재혼이라는 변증법적 악의 굴레에 세상은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당사자들에게 아무도 돌을 던지거나 손가락질을 할 수 없다. 그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파하며 상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혼인에서 빚어지는 많은 문제들은 법으로 해결될 수 없다. 문제의 해결은 "서약"에 있다. 일생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겠노라 한 그 약속에 있다는 말이다. 약속은 지켜질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혼인의 순간에 서로가 쌍방에게 주고받은 사랑과 존경과 신의의 서약이 문제해결의 실마리이다. 단지 혼인의 서약만이 아니라 성직자와 수도자의 서약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서약은 배우자 쌍방이나 당사자와 장상 사이의 서약이기 이전에 하느님과의 서약이다. 인간이 서약을 깨어버린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당장 응징하시지는 않는다. 그분은 한번도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 하고 묻지 않으신다. 오히려 "내가 어떻게 하면 너를 다시 너를 가까이 할 수 있겠니?" 하고 물으신다. 의심스럽다면 십자가에 달려 계신 예수님을 좀더 가까이 가서 보라.◆[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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