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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로사리오의 성모)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10-07 조회수1,978 추천수16 반대(0) 신고

◎ 2003년 10월 7일 (화) -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묵주기도의 형태는 15세기경 도미니코 수도회원과 예수회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오늘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은 터키의 이슬람교도와 벌인 레판토 해전(海戰)에서 승리한 날(1571년 10월 7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도미니코 수도회 출신 성 비오 5세 교황(1566-1572)이 1572년에 제정하였다. 이는 당시의 가톨릭군사들이 전쟁에 임하기 전에 묵주기도를 바침으로써 성모 마리아의 도움을 받아 승리하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1716년 헝가리의 페터바르다인에서도 터키의 무슬림과 큰 전쟁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묵주기도 덕분에 헝가리의 가톨릭군사들이 승리하였다고 한다. 이에 헝가리의 왕 칼 6세가 교황 클레멘스 11세(1700-1721)에게 요청하여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을 전세계 교회의 축일로 선포하였다.

 

  신약성서를 근거로 한 주님기도와 성모송이 신앙생활의 일상기도로 자리를 잡을 무렵, 반복하는 기도의 횟수를 세기 위한 방법으로 손가락을 사용하는 대신 조약돌이나 실로 꿴 구슬이나 매듭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5-6세기 문헌들에서 발견된다. 12세기부터 로사리오(Rosario)기도가 도미니코 수도회원들 사이에서 처음 시작하였다는 이야기는 그저 우연이 아니다. 구전(口傳)에 의한 사실이지만 도미니코(1170-1221) 성인은 환시 속에서 성모님으로부터 로사리오(묵주)를 내려 받았다고 한다. 그 환시는 하느님의 분노로 위협받는 죄 많은 세상이 성모님의 중재로 구원받는 광경이었다는 것이다. 그때 성모님께서 당신의 아들로 두 사람을 지적했는데 한 사람은 도미니코 자신이고, 다른 한 사람은 낯선 사람이었다고 한다. 다음날 성당에서 도미니코는 놀랍게도 꿈속에서 본 낯선 남자가 누더기를 입은 거지 차림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가 바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1181-1226) 성인이었다.

 

  레판토 해전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572년 비오 5세 교황이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을 제정한 직후 그레고리오 13세(1572-1585) 교황은 이 축일을 로사리오 제단이 있는 성당에서만 지내도록 제한하였다. 그후 클레멘스 11세 교황이 헝가리의 왕 칼 4세의 요청으로 1716년 전체교회의 축일로 선포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1716년은 사제들을 중심으로 "마리아 선교회"를 창설하여 성모신심과 로사리오기도 신심에 일생을 바친 몽포르의 루도비코(1673-1716) 성인이 세상을 떠난 해이다.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 이래로 로사리오 기도는 날로 번창하였고, 1858년 루르드의 마사비엘 동굴에서 18번이나 벨라뎃다 성녀에게 발현한 성모님은 매번 손에 로사리오(묵주)를 들고 계셨으며, 1917년 파티마에서 3명의 어린이들에게 발현한 성모님은 자신을 "로사리오의 부인"으로 소개하면서 죄인들의 회개와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매일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라고 하셨다. 1921년 아일랜드의 프랭크 더프(1889-1980)에 의해 레지오마리에가 창설되면서 로사리오 기도는 모든 가톨릭신자들의 일상기도가 되었다. 그렇다고 오늘 축일이 단순히 묵주기도를 위한 축일은 아니다. 오늘 축일은 묵주기도를 통하여 하느님 성자 그리스도의 강생과 공생활, 수난과 십자가 죽음,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강림의 신비와 영광을 묵상하고, 이에 특별한 방법으로 참여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생애와 신비를 묵상하면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도우심을 청하는 축일이 되는 것이다.

 

[오늘의 복음]  루가 10,38-42

<마르타는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들였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때에 예수께서 38) 어떤 마을에 들르셨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들였다. 39) 그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던 마르타는 예수께 와서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 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 주라고 일러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그러나 주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42)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마르타와 마리아

 

  어제는 우리가 루가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참된 사랑에 관한 가르침(사랑의 이중계명)을 들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손님으로 모신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예수님에 대한 행동양식을 통하여 삶에 있어서 "실상 필요한 단 한가지"를 가르쳐주는 대목이다. 요한복음에는 마리아와  마르타가 오빠인 라자로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동편 요르단강 쪽으로 3Km 지점에 위치한 베다니아에 살았다고 한다.(요한 11,1) 그런데 루가가 말하는 "어떤 마을"이 베다니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예수의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는 중이긴 하지만, 복음의 전후문맥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아직 예리고 근처에도 이르지 못하셨기 때문이다.(루가 18,35) 루가에게 있어서 지리적 위치는 그리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루가는 그저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더욱이 예수님을 손님으로 맞이한 가족에게 실상 필요한 단 한가지를 가르쳐주고자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손님을 자기 집에 초대하면 처음에는 주인이 손님에게 "베푸는 자"가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위치가 바뀌어 손님이 주인에게 "베푸는 자"가 된다. 주인이 손님으로부터 "받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곁에서 야훼의 천사 셋을 보고 손님으로 맞아들인 경우와 같다. 아브라함은 낯선 사람 셋을 뛰어나가 맞으면서 손님으로 들어와 줄 것을 청한다. 아브라함이 처음에는 극진한 정성으로 손님들을 대접한다. 그러나 곧 야훼의 손님들은 그에게 이사악의 출생소식을 선물로 준다.(창세 18,1-10) 주인이 오히려 손님으로부터 "받는 자"가 된 셈이다. 이것은 오늘 복음의 마르타와 마리아를 통하여 더욱 명확해진다.

 

  통상 집에 손님이 오면 음식으로 손님을 접대하는데 바쁜 가족도 있을 것이고, 와중에 손님 곁에서 대화를 꾸려나가는 가족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흔히 있는 일로서 같은 자매끼리 마르타처럼 누구는 일하고 마리아처럼 누구는 일하지 않고 손님 곁에서 노닥거린다면 자매지간에 꼴사나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마르타도 자신의 불평을 주님께 말씀 드린 것이다. 예수께서 처음에는 마르타로 하여금 시중을 들게 하시지만, 당신 발치에 앉아 말씀을 경청하는 마리아의 태도를 통하여 자신을 "베푸는 자"로 부각시키신다. 예수께서 베풀어주시는 것은 "실상 필요한 단 한가지"로서 바로 말씀이신 당신 자신이시다. 예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셨다.(마태 20,28) 그렇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삶 전체를 통하여 인간을 섬기러 오신 것이다. 따라서 말씀이신 예수님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 이외에 더 필요한 것은 사실상 없다. 그렇다고 마르타의 가정적이며 활동적인 태도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성서가 전해주는 마리아의 태도에서 "관상적 모범"을, 마르타의 태도에서 "활동적 모범"을 예수님을 따르는 방법으로 받아들였다. 관상(觀想)과 활동(活動), 이 둘은 동시에 행할 수 없는 덕목(德目)이다. 그러나 오늘 복음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이 더 필요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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