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도시나 마음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고장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거기에서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그 집에 들어 갈 때에는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릴 만 하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집에 내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 평화는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아들의 뒷모습
다니던 직장을 잠시 휴직하고 연구하는 남편을 따라 이곳 캐나다로 온 지도 9개월이 다 되어간다. 어른들이야 그렇다 치지만 아이들이 잘 적응해 낼까... 오기 전부터 큰 걱정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두 아이 모두 잘 적응해냈다. 언어문제도 어른보다 쉬웠고 2학기로 접어드니 학교성적도 매우 우수해졌다. 무엇보다 학교 가기를 좋아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하지만 어찌 아픔이 없으랴!...
"엄마, 요즈음 쟈스민이 애쉴리하고 더 많이 놀아."
어느 날 저녁,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가 불쑥 고민을 털어놓는다.
입만 열면 ’쟈스민, 쟈스민’ 하던 아이였는데..., 그 예쁜 단짝 덕분에 학교생활이 즐겁기만 한 아이였는데..., 왜 그렇게 좋으냐 물으면 "나랑 함께 놀아주니까..."하고 조금은 가슴 아픈 말을 하던 아이였는데...
"그런데 엄마..., 쟈스민이 나 말 잘 못해서 그런 걸까?"
유치원과정 아들은 때로 내 마음을 아주 많이 아프게 한다.
싸준 도시락을 남겨 와서 걱정할 때마다 "시간이 짧아서 그랬어."하길래 정말 그런 줄로만 알았다.
워낙 천천히 먹는 아이니까... 이곳 학교는 짧은 식사시간이 끝나면 아이들을 무조건 운동장으로 내보내니까...
하지만 최근에야 진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거의 늘 혼자서 점심을 먹어 왔던 것이다.
아침에 학교를 바래다주는데 아들이 "엄마, 이제 그만 가." 한다.
’엄마는 조금 더 가도 되는데..., 조금 더 가주고 싶은데..., 아직도 학교 문은 저기지 않니...’
하지만 나는 아들의 손을 놓아준다.
어차피 놓아줄 수밖에 없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돌아서서 가는 그 작은 뒷모습이 얼마나 짠하던지...
"주님, 제게 앓는 사람을 고쳐줄 용기와 힘을 주십시오. 그리고 아이들의 집(마음)으로 들어갈 때도 주님의 평화를 먼저 청하는 겸손한 자 되게 해주소서."
*이 글은 지난 2003년 4-5월에 썻던 묵상글입니다.
지금 저희 아이들은 친구도 많이 생기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모레(이곳 캐나다 시간 11월 27일)까지만 학교를 다닐 예정이지요.
친구들하고 선생님하고 헤어지는 것은 슬프지만, 한국으로 돌아가 할머니, 아빠, 큰아빠, 고모, 이모, 그리고 해리, 혁민이, 영수, 수연이 만날 생각에 지금 너무너무 행복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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