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연중34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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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11-28 | 조회수1,400 | 추천수12 | 반대(0) 신고 |
◎ 2003년 11월 28일 (금) -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오늘의 복음] 루가 21,29-33 <너희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온 줄 알아라.>
29)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런 비유를 들려 주셨다. "저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들을 보아라. 30) 나무에 잎이 돋으면 그것을 보아 여름이 벌써 다가온 것을 알게 된다. 31)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온 줄 알아라. 32)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가 없어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33)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오늘은 내일의 거울
매번 거의 비슷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내일이 전혀 다른 하루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은 어제의 결과요, 내일은 오늘의 투영(投影)이다"고 말한다. 내일이 오늘의 투영이라는 말은 "오늘이 내일을 비춰보는 거울"이라는 말과 같다. 그런데 오늘과 전혀 다른 내일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보통 두 가지 방향으로 요약된다. 하나는 오늘과 전혀 다른 내일을 오늘이라는 시점에서 계획하여 추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D-Day"를 정하거나, 정해진 "D-Day"에 맞추어 준비하며 사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오늘은 내일의 거울이다’는 단언(斷言)은 유효하다. 뿐만 아니라 이런 경우에는 성공 또는 실패라는 결과가 주어진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가 계획한 적이 없는 예상치 않은 일에 벌어짐으로써 오늘과 전혀 다른 내일을 맞이해야 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는 성공이나 실패, 또는 선택이나 거부 따위의 단어는 설 자리가 없다. 여기에는 불응(不應)이란 있을 수 없고 오직 말없이 따라야 하는 순응(順應)만 있을 뿐이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내일이 들이닥쳐, 이를 선택, 혹은 거부하거나, 이에 불응할 수 없고, 순응해야만 한다면, 그런 내일을 오늘에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고 현명한 일이다. 세상의 종말이 내가 계획한 일이 아니라고 해서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내가 계획하지 않았으면 네가 계획한 것이고, 네가 하지 않았으면 하느님께서 하신 것이다. 자연의 섭리도 그렇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봄이 가면 여름이 오기 마련이다.(30절) 이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성서적 언어에서 여름이란 곧 수확을 말하고, 수확의 때는 바로 심판의 시기를 의미한다. 성도 예루살렘의 멸망도 하나의 심판이었으며, 계획된 하느님 왕권의 계시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정확한 세상종말의 때를 말씀하신 적은 한번도 없으시다. 그러나 봄 안에 여름이 포함되어, 봄이 가면 여름이 오는 자연의 섭리와 같이 오늘 안에 이미 내일이 포함되어, 종말의 내일이 분명히 온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은 종말을 맞이해야 할만큼 익었다. 온갖 거짓과 속임수, 비리와 부정부패, 매관매직과 청탁과 향응, 황금만능주의와 한탕주의, 자연파괴와 인명경시풍조,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天災地變)과 인재(人災) 등이 세상종말의 징조로 드러난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이런 모습을 관상(觀想)하면서 "세상이 뒤집어지기"를 바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런 세상과 거래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몸을 사리고 엎드리며, 피하여 숨는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럴 때일수록 "몸을 세우고 머리를 들라"(루가 21,28)고 말씀하셨다. 몸을 세우고 머리를 드는 것은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영원히 남아 있을 주님의 말씀(33절)을 따라 사는 것이다. 내 발의 등불이요 나의 길에 빛이신(시편 119,105) 하느님의 말씀을 붙잡고 옳게 사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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