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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 받았던 추억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3-12-05 조회수1,781 추천수9 반대(0) 신고

 

그리고 내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어떤 사람들을 대하든지 그들처럼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중에서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한 것입니다.

                                         (고린토 1서 9, 22)

 

엊그제 수요일의 독서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다가 가시는 바오로 사도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저에게도 30 여년전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습니다.

 

당시 사회 경제적인 상황도 어려웠던 1960년대의 이야기 입니다. 동생들 셋을 데리고 객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노릇을 하던 때였습니다.학교에 근무를 하면서도 옷차림에도 신경을 쓸 수가 없을 만큼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월급을 타면 봉투째 어머니께 드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심지어 시계 하나도 사지 않고 지내던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던 곳에는 공소만 있었기 때문에, 판공성사를 보기 위해 시외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갔습니다. 그 곳의 성당에는 오르간은 있었지만 반주자가 없었습니다. 대학시절 틈나는 대로 오르간실에서 성가를 연습하며 생활속의 어려움을 달래곤 했기에 썩 능숙하지는 못해도 미사 반주는 할 수가 있었던 터라 예쁜 수녀님께 발탁(?)되었습니다.

 

반주를 하게 된 인연으로 의사 수녀님이셨던 예쁜 수녀님께로부터 위장병도 공짜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동생이 마침 고교 진학을 해야 하는데 저희가 살고 있던 곳에는 여고가 없었습니다. 딱한 사정을 들으신 수녀님께서 성당과 병원이 있던 읍내의 학교로 전근을 할 수 있도록 교육장님께 부탁을 드려서 저희들은 이사를 하게 되었고 여동생도 여고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근무하고 있던 학교의 교장 선생님의 회갑 까지도 챙겨

주시며 저의 후견인의 역활을 하셨습니다. 보시기에 옷차림도 안쓰러우셨는지 독일에서 보내온 옷들을 양장점에서 고쳐 입는 품삯까지 지불해 놓으시곤 양장점에 가서 사이즈만 재라고 하셨습니다.

 

물심 양면으로 도움을 받고 있을 때, 여동생이 급성 맹장염에 걸리게 되자 수술을 할 수 있는 큰 병원으로 보내 주시고 당시 본당 신부님이셨던 메리놀 회 소속이신 신부님께 말씀 드려서 수술비도 모두 지원 해 주셨습니다. 또 본당 신부님께 말씀 드려서 호주에 있는 어느 부인이 보내 주시는 헌금으로 여동생의 학비까지 지원 받도록 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랑감이었던 남편을 수녀원으로 초대하여 맛있는 음식까지 차려 주시고 수녀님들이 기타를 치시며 환영해 주셨습니다. 결혼식 때는 병원도 쉬시고 먼 곳까지 축하하러 와 주시고 과분한 선물과 금일봉까지 받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잘나고 예쁜 구석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저의 가정 형편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처럼 세심한 배려와 도움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주변의 어려운 사람은 어떻게 그리도 잘 알아내시는지 구석 구석 살피셔서 많은 사람을 도우셨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인해 5.16 민족상 까지 받으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남편과 저도 영향을 많이 받았고 수녀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또 다른 곳에 전해주고 싶은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 왔습니다.

 

한 사람 한사람의 어려운 사정을 배려하고,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을 해 주시며 다가가시는 복음 선포의 자세를 보여주신 수녀님을 그리워하며 이 글을 바칩니다.

 

엊그제는 또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대축일이었지요. 성인의 죽음을 불사한 선교를 떠올리며 일상 안에서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저의 약함을 주님께 봉헌 하면서, 제 삶의 순간순간 마다 의연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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