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성녀 루치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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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12-13 | 조회수1,701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 2003년 12월 13일 (토) -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286?-305)
성녀 루치아의 세례명을 가진 자매들이 성녀에 대하여 알고자 노력할 때에 성녀의 삶에 대한 전승과 역사적 근거가 거의 없다는 점에 실망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성체성사가 집전되는 미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성찬의 전례를 이루는 감사기도이다. 통상 감사기도에는 네 가지의 양식이 있다. 이 중에 제일 많이 사용되는 것은 감사기도 제2양식이다. 하지만 감사기도 제1양식을 보면, 그리스도의 성체성사 제정말씀 전·후에 성인들을 기억하는 기도부분이 있다. 전반부에는 천주의 모친 동정 성 마리아와 성 요셉을 비롯하여 11사도 및 12명의 성인들이 호칭되고, 후반부에는 마티아를 비롯하여 14명의 성인·성녀들이 호칭된다. 여기에 호칭된 성녀는 모두 7명인데 영광스럽게도 성녀 아가타와 함께 성녀 루치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성녀 루치아가 동정 순교자로서 일찍부터 로마교회의 공경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루치아는 286년경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에서 태어났다. 홀로 세례를 받은 소녀 루치아는 어머니 오이티키아의 혼인요청을 만류하고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결국 병이 난 어머니를 모시고 루치아가 찾아간 곳은 카타니아에 있는 성녀 아가타(225?-250?)의 무덤이었다. 루치아의 간절한 기도는 어머니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였고, 그녀의 병을 낫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루치아의 꿈속에 나타난 성녀 아가타는 자신과 같은 루치아의 운명을 예견하였다고 한다. 시라쿠사로 돌아온 루치아는 어머니와 함께 가산을 모두 팔아 빈민병자구호소를 설치하여 이웃사랑을 실천하였다. 동시에 삼엄한 박해상황에서 신자들의 은닉과 식음(食飮)을 도모하였고, 어둠 속에서도 두 손으로 일하기 위하여 머리 위에 촛불을 묶어 밝혔다고 한다.
결국 루치아와 혼담이 있었던 청년이 화가 치밀어 시라쿠사의 관리에게 루치아를 고발하여 넘겨버린다. 광장에서 루치아의 참형이 시작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관리들이 황소를 동원해 성녀를 찢어 죽이려하였으나 불가능했고, 펄펄 끓인 기름을 갖다 부었어도 끄떡없었다고 한다. 그날 밤 광장에 묶인 채로 성체를 받아 모신 성녀 루치아는 다음 날 참수를 당하였다. 관리들이 긴 칼로 성녀의 목을 난자하고 결국은 잘랐다. 성녀는 목이 붙어있는 동안 큰 소리로 기도하면서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의 최후와 머지않아 얻게 될 그리스도교의 평화와 자유를 예언하였다고 한다. 그 날은 305년 12월 13일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284-305)의 박해 때였다. 성녀 루치아는 성녀 아가타와 함께 시칠리아뿐 아니라 베니스와 로마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녀들 중의 한 분이시다.
[오늘의 복음] 마태 17,10-13 <엘리야는 벌써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10) 그 때에 제자들이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께서는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준비를 갖추어 놓을 것이다. 12) 그런데 실상 엘리야는 벌써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사람의 아들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13) 그제야 비로소 제자들은 이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믿음과 불신의 대결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높은 산으로 데려가 자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체험하게 한 뒤(마태 17,1-9) 산을 내려오면서 제자들과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이다. 대화내용의 핵심은 물론 엘리야와 메시아, 세례자 요한과 예수와의 관계이다. 대화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는 제자들에게 요한과 예수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은 지난 목요일의 복음이다.(마태 11,11-15) 예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두고 모든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하셨고, 말라기 예언자가 특정한 때에 올 것으로 예언한 "특사"와 "엘리야"가 바로 세례자 요한임을 증언하셨다. 말라기 예언자는 "보아라,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말라 3,1), 그리고 "야훼가 나타날 날, 그 무서운 날을 앞두고 내가 틀림없이 예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낸다"(말라 3,23)고 하였다. 실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기 직전에 그 길을 닦을 야훼의 특사가 먼저 올 것이며, 세상 종말에 야훼의 심판이 있기 전에 불수레를 타고 승천했던(2열왕 2,11) 엘리야가 다시 와서 이스라엘의 화해와 재건을 도모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야훼의 종말심판은 메시아에 의한 새로운 세상의 개벽(開闢)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예언이 세례자 요한과 메시아이신 자신을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선포하고 계시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이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에 대한 단순한 불신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예수의 제자들도 세례자 요한의 정체성에 대하여 정확한 지식을 갖지 못하고 있다.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이 볼 때,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사명, 즉 이스라엘의 화해와 재건도모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채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참수된 까닭에 "재림한 엘리야"가 될 수 없고, 따라서 메시아의 도래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예수가 메시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제자들의 의심은 예수님의 증언에 의해 차차 풀려가지만, 정작 해답은 예수님의 수난 예고 속에 들어 있다. 사람의 아들도 세례자 요한과 같은 대접을 받아 고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세 차례나 계속되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예고를 통하여 제자들은 차츰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참된 정체를 깨달아 간다. 이제 선구자와 메시아에 대한 제자들의 수용과 믿음은 바리사이와 율사들의 배척과 불신의 대결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허락된 은총은 제자들이 가졌던 믿음을 이미 예수님 성탄의 구유에서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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