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無答이 正答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3-12-15 조회수1,770 추천수15 반대(0) 신고

독서: 민수 24, 2-1.15-17

복음: 마태오 21,23-27

 

종교 지도자들인 대사제와 정치 권력자들인 원로들의 입장에서 볼 때,

합당한 자격이라곤 눈씻고 찾아도 전혀 없는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사실 예수는 율법학자들의 문하에서 수학한 일도 없고

사제 계급에 속하지도 않은 사람이 아닌가?

저자거리라면 모를까 거룩한 성전까지 들어와 가르칠 자격은 없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합니까?"

한마디로 ’누구 마음대로 이런 일들을 하느냐?’는 것이다.

애초에 ’예수의 권한’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예수는 질문에는 대답도 않고 배짱좋게 다시 반문한다.

"요한은 누구에게서 권한을 받아 세례를 베풀었느냐?"

 

군중들은 이미 세례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던 판인데

그 예언자 요한과 당신을 같은 반열에 놓고 비교하는 것이 아닌가?

 

실상 예수님의 대답은 논리상으로 ’논점 일탈의 오류’에 해당한다.

대답을 회피하고 다른 말씀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을 거론하신 것은

대답하기 곤란한 순간을 모면하려고 그냥 둘러 댄 것은 아니다.

즉 논점과 관련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예수님은 당신과 세례자 요한 사이에 연관성을 상기시키고 싶은 것이다.

세례자 요한이 예언자라면, 그리고 요한의 권한이 하늘에서 온 것이라면

세례자 요한이 준비하고 예언한 내용이야말로 당신에 관한 것이었고

따라서 당신의 권한은 하늘에서 온 것임을 알아들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예수의 엉뚱한 답변 속에는 이미 정답이 숨겨져있었다.

 

그러나 백성의 지도자들은 정답을 찾기는 커녕 난처한 함정에서 빠져나갈 궁리나 찾는다.

"그 권한을 하늘이 주었다고 하면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할 것이고

사람이 주었다고 하면 모두들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으니 군중이 가만 있지 않을테지?"

그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결론은 "모르겠습니다" 였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난처한 자리에선 그저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가 전통인가보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입지일 뿐이다.

 

사실 "모르겠다"고 한 그들의 대답은 진실의 한 측면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요한의 권한에 관한 문제나 예수의 권한에 관한 문제나 모두 체험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일이다.

 

불치병을 앓고 있던 환자가 치유되었을 때, 그 환자만이 의사를 증명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요한의 외침을 듣고 회개의 세례를 받은 사람만이

그가 예언자임을 알고, 또 그의 권한이 하늘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마찬가지로 예수의 권위있는 가르침을 듣고 실천해본 사람만이,

그에게서 내적 외적 치유를 받은자만이, 그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온 유다와 갈릴래아와 시돈과 띠로, 아니 그들에게 몰려왔던 모든 백성들은

바로 그런 체험을 했던 사람들이며, 그들은 무엇으로 증명할 길은 없으나

요한과 예수가 하늘에서 권한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사제, 원로들은 요한에게도, 예수에게도

한번도 마음을 열어 본 적이 없는 자들이다.

그러니 그들이 어떻게 요한의 권한과 예수의 권한을 알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실제로 ’알지 못했다.’

 

이런 경우에 예수도 자신의 권능의 근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겠는가?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겠다."

 

그렇다.

예수를 하늘에서 내려온 분이라 믿는 것, 그분을 그리스도로 모시는 것은

어떤 말로도 이성적인 설명으로도 사실 불가능한 것이다.

오로지 마음으로, 체험으로, 설명이 가능할 뿐이다.

 

오늘 독서에서도 이성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하늘의 권능을 체험한 한 사람이 있다.

발람이라는 이방인 점술가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달라는 모압왕의 부탁을 받고는

반대로 이스라엘을 축복해주고 있다.

 

"브올의 아들 발람의 말이다. 천리안을 가진 사내의 말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는 말이다.

전능하신 하느님을 환상으로 뵙고 엎어지며 눈이 열려 하는 말이다....

지존하신 이의 생각을 깨치고 하는 말이다." 하면서 엄청한 축복을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발람이 자신의 말대로 전능하신 하느님, 지존하신 이의 생각을 깨치기 까지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해주실 줄 알고 있었으나

부귀영화를 마련해준다는 모압왕 발락의 말에 동요되어 길을 떠난다.

 

그가 항시 타고 다니던 나귀는 길을 막는 천사를 알아보았으나,

’천리안’을 가졌다는 그는 하느님의 천사를 알아보지 못했다.

세번이나 채찍질당하고 걷어차이던 나귀가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면서 그는 야훼의 말씀을 올바로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느님의 일, 그분의 권능에 대해 이성적으로 이해시킬 답변은 없다!

그러나 그를 믿는 사람들의 생활 안에서 그 답변은 서서히 드러난다.

 

알콜중독자였던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고 했다.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예수를 믿는다면서, 그는 누구며, 언제 어디서 태어났고,

언제 돌아가셨으며, 그의 제자는 누구요?"

"나는 그런 것은 모르지만, 그를 알고부터 나는 술을 끊었으며 직장을 찾았고,

빚도 갚았으며, 내가 어서 돌아오길 기다리며 저녁상을 차리는 아내와 아이들이 생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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