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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주님 공현 후 수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1-07 조회수1,452 추천수13 반대(0) 신고

◎ 2004년 1월 7일 (수) - 주님 공현 후 수요일

 

▣ 페냐포르트의 성 라이문도 (1175-1275) 사제 기념

 

  1175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페냐포르트 성(城)에서 태어난 라이문도 성인은 바르셀로나에서 기본 학문을 공부한 뒤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교회법을 전공함으로써 중세기의 유명한 교회법학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당시 활동과 탁발수도회로 창설된 프란치스코 수도회(1210년)와 도미니코 수도회(1216)의 정신에 매료되어 도미니코 수도회원이 되었다. 그곳 볼로냐에서 도미니코(1170-1221) 성인이 세상을 떠난 후 고향으로 돌아와 1222년 베드로 놀라스코와 함께 "메르체다리오회"를 창설하였다. 이 수도회는 이슬람 세력에 굴복한 그리스도교 노예들의 해방과 무슬림과 유대인들의 개종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1230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성인을 로마로 초빙하여 교황청 문헌업무를 맡긴다. 이 때 성인은 교회법과 교황칙서들을 모아서 "숨마 까수움"(Summa Casuum)을 발간하였고, 1234년 도미니코 성인의 시성식에도 함께 하였다. 라이문도 성인은 1236년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와 수도회 활동에 전념하면서 1238-1240년까지 도미니코 수도회의 제3대 총장을 역임한다. 라이문도 성인은 아랍어와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워 무슬림과 유대인들의 선교와 개종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고, 당대 최고의 석학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를 격려하여 이방인 선교를 위한 "숨마 꼰뜨라 젠띨레스"(Summa Contra Gentiles)를 저술케 하였다. 라이문도 성인은 100살까지 장수를 누리다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늘의 복음]  마르 6,45-52

<제자들은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45) 그 뒤에 곧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건너편 베싸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 동안에 혼자서 군중을 돌려 보내셨다. 46) 그들을 보내시고 나서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올라가셨다. 47) 날이 저물었을 때에 배는 바다 한가운데 있었고 예수께서는 혼자 육지에 계셨다. 48) 제자들은 마침 역풍을 만나 배를 젓느라고 몹시 애를 쓰고 있었다. 이것을 보신 예수께서는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 쪽으로 오시다가 그들 곁을 지나쳐 가시려고 하였다. 그것은 새벽 네 시쯤이었다. 49) 제자들은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줄 알고 비명을 질렀다. 50) 그를 보고 모두 겁에 질렸던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곧 제자들을 향하여 "나다, 겁내지 말고 안심하여라" 하시며 51)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다. 제자들은 너무나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52) 그들은 마음이 무디어서 군중에게 빵을 먹이신 기적도 아직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기도와 말씀의 놀라움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12광주리를 가득 채우는 기적이 있었다. 한 끼의 식사를 이렇게 성대하게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들이 가득 찼을까? 제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고 군중은 또 어떠했을까? 마르코복음에는 예수께서 베푸신 기적에 대한 어떤 반응이나 효과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다르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베푸신 기적을 보고 예수를 세상에 오시기로 된 예언자로 믿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달려들어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려는 낌새를 알아채시고 산으로 피해 가셨다고 한다.(요한 6,14-15) 그런 다음에 요한복음도 마르코복음에서와 같이 예수께서 물위를 걸으신 기적을 보도하고 있다.(요한 6,17-21)

 

  마르코복음은 요한복음과 달리 예수께서 빵의 기적을 베푸신 직후 다른 어떤 효과가 개입되기 전에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호수 건너편 베싸이다로 먼저 가게 하셨고, 모여 있던 군중을 흩어 돌려보내셨다. 우리가 복음서 전체에서 늘 볼 수 있는 장면은 예수께서 기적을 베푸신 후에 기적을 입은 사람들을 그 현장에 두지 않고 바로 돌려보내시는 것이다. 게다가 자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마태 9,22; 15,28; 마르 5,34; 10,52; 루가 7,50; 8,48; 17,19; 18,42 등)고 하시면서 기적의 원인을 예수님 자신보다 사람 편에 두셨다. 이런 점들은 기적의 성취가 예수님 편에서 행하시는 일방적인 행위라기보다 <생산자와 소비자>, 또는 <발신자와 수신자> 간의 쌍방적인 행위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즉, 기적만이 능사가 아니라 기적(奇蹟)과 일상(日常)의 조화를 의도하고 계신 것이다.      

    

  기적과 일상의 조화는 참으로 중요하다. 기적을 놓고 이를 체험한 측이나 이를 베푼 측에 똑같이 있을 수 있는 감정은 만족감과 달콤함이다. 누구든지 이러한 쾌감이 지속되기를 바라지만 일상(日常)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적의 주도권을 잡은 예수에게도, 기적을 체험하는 인간에게도 같은 비중으로 적용된다. 그래서 기적(奇蹟)은 상식을 벗어난 일상이탈로 소개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군중을 흩어 집으로 돌려보내시고 제자들을 재촉하여 다음 선교지로 서둘러 보내시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기적과 일상의 조화를 꽤하시는 것이다. 기적과 일상을 특히 잘 조화시키는 요소가 있다. 그 요소는 오늘 복음에서 두 가지로 발견된다.

 

  첫째는 기도(祈禱)이다. 예수께서 사람들과 제자들을 보내고 산으로 가서 기도하신 것은 기적을 베푼 스스로의 성취감과 달콤함에서 벗어나 기적을 가능하게 하신 하느님과 대면하기 위해서이다. 즉 기도의 일상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둘째는 말씀이다. 곧 "나다, 겁내지 말고 안심하여라"(50절) 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역풍을 만나 일상의 어려움을 겪는 모든 이들을 향한 말씀이다. "나다"(에고 에이미)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정식으로 소개하는 자기계시적 말씀이며(출애 3,14), 하느님 현존의 방식이다. 누구든지 기도하면서 "나다"라는 하느님 현존의 말씀을 신뢰하는 사람은 일상 속에서 기적을 체험하게 되며, 기적 속에서 일상의 평정을 찾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기도하지 않고 "나다"는 말씀의 하느님 현존에 대한 체험 없이는 아무도 기적과 일상의 조화를 바랄 수 없으며, 이를 체험할 수도 없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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